사라진 10원의 비밀
일곱 살 어느 날의 일이다. 우연히 들어간 사랑방에서 못에 걸어둔 둘째 오빠의 바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유달리 깔끔한 성격이기에 옷이 구겨지면 괜히 우리에게 덤터기 씌워 억울하게 혼낼 것 같아 못에 걸려고 들었는데 바지 한쪽이 묵직했다.
바지를 아래위로 흔들어 보니 철렁철렁 동전 소리가 난다. 순간 마음속 검은 그림자가 속삭였다. “이렇게 많은데 동전 한 개쯤이야 어때”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뺐다를 거듭하며 오랜 망설임 끝에 그만 꼬임에 넘어가고 말았다.
10원을 꺼내 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얼른 넣었다. 마음속 어디선가 안된다는 으름장도 들렸지만 이미 돈은 내 주머니 속에 숨을 할딱 거리며 숨어 버렸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오빠에게 여러 개의 동전 중 하나쯤은 없어져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야무진 오산이는 걸 느끼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원으로 뭘 할까' 아랫목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불안하고도 행복한 상상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으로 안테나의 주파수를 맞추며 귀를 쫑긋 세웠다. 왼쪽 가슴에선 토끼들이 방아를 힘차고도 바쁘게 찧어댔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 먹어도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누굴까? 언니였다면 벌써 내 이름을 불렀거나 내가 누워있는 옆으로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거나, 내가 뒤집어쓴 이불을 '획' 하고 걷으며 “뭐해?” 하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들어온 기척 이후에도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는 걸 보면 아버지 이거나 오빠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러 엄마도 말없이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엄마는 오늘 장엘 가셨다. 분명 엄마도 아니었다. 그때 철렁 철렁 주머니에서 동전들이 철렁거렸다. “우리가 다 있는지 확인해봐! 얼른 확인해봐!” 동전들이 제각기 재촉하는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오빠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때 철렁하는 짧은 단음과 함께 주머니에서 동전들의 탈출 소리와 함께 잠 시정적이 들었다. 곧이어 찰칵찰칵 찰칵....... 동전 세는 소리가 났다. 오빠였다. 분명 바지 속 동전을 꺼내 세는 소리였다. 130원 중 내가 10원을 가지고 왔으니 120원이 남았을 것이다. 나는 그 철렁 소리를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을 꼴깍 삼키며 함께 수를 세었다. 아홉열열하나열둘. 역시나 열둘에서 소리는 멈추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철렁거리는 동전 소리가 났다. 하나둘.... 열둘.
역시나 열둘이었다. 나는 자는 척 누워서 혹여 들킬세라 한숨을 들이마셨다 내 뱉았다으며 쪼물거리는 가슴을 가만히 잡았다.
크게 숨을 쉬기라도 하면 오빠에게 들키기라도 할 것 같았다. 한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다. 잠시 후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발치 아래가 들썩 거렸다. 내가 누워있는 요 아래를 오빠가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 떨어졌나? 왜 하나가 없지?” 드디어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130원이 있었는데 하나가 어디 갔지?"
큰일이다. 오빠는 돈 10원이 없어진 걸 알고 있었다. 영락없이 지금 일어나면 오빠는 나더러 가져갔다고 몰아세울 것이다. 오빠의 그 호랑이처럼 큰 눈에 검은 눈동자가 동굴 동굴 구르며 혼날 생각을 하니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고백해서는 안 되겠다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나는 깊이 잠이 든 척 고른 숨 흉내를 냈다. 온몸이 따끔거렸다. 답답해 몸이 뒤틀렸다. 뜨거운 바닥 때문에 온 몸에 땀이 나고 답답했지만 꾹 참아야 했다. 내쉰 숨이 다시 들숨으로 들어와 숨 쉬는 것조차 답답했다. 하지만 들키지 않기으려면 참아야 한다. 온몸을 방바닥에 딱 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일곱 살의 몸부림이었다.
그때 오빠가 머리맡에 있는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 문을 열면 시멘트로 쌓아 올린 정 사각 모양의 작은 처마가 있다. 그 처마 아래 울퉁불퉁 돌계단이 있고 그 아래 마당이 있었다. 오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처마를 샅샅이 뒤지는 듯했다. “어디 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오빠의 중얼거림이 천둥처럼 들렸다.
“분명히 130원이었는데. 10원이 어디 갔지? 어디 빠졌나?” 오빠는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방과 걸어놓은 바지 주머니 속과 내 잠자리 아래를 뒤적거리기도 하고, 처마와 계단과 마당을 오가며 샅샅이 뒤졌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빠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만 한다면 당장 그 10원을 주머니에 넣어 둘 것이다. 그래서 오빠가 숫자를 잘 못 센 거라 착각하게 만들어야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도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니들을 불러 세웠다. “ 승미야. 혹시 내 주머니에 있는 돈 10원 가져갔나?”
“아니 오빠 난 못 봤는데? 난 못 봤어!” 언니는 마치 오빠가 언니를 의심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승현이 너는?” “나도 못 봤어 오빠. 난 오늘 이 방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는걸? “ ”참 이상하네 우리 집에 귀신이라도 있나? 혹시 아버지 방에 귀신 사는 거 아니야? 나가자! “ 오빠는 두 언니를 앞세워 드디어 사랑방을 나섰다. 저절로 한숨이 났다. 빼꼼히 이불을 걷으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쉬었다. 온몸에는 땀이 흠뻑 젖어 축축했다. 하지만 좀 전 오빠가 자리만 비우면 그 돈을 당장이라도 주머니에 넣어두리라 다짐했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이제는 제 자리에 넣어도 의심받을까 봐 겁이 났다. 내가 자는 척 한걸 오빠가 속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주머니 속에 넣어 두려니 벌써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한 알사탕의 달콤함을 잃어버릴 것이 서운해졌다. 어차피 잃어버린 줄 알고 있는데 그냥 내일 사탕이나 사 먹으라는 검은 마음이 속삭였다. "그래 어차피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 나는 강심장이 되어 완벽한 거짓말의 완성을 꿈꾸었다. 잠에서 깨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눈을 비비며 사랑방을 나서려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뚫린 창호지 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오빠와 두 언니가 마당과 처마를 서성이며 아직도 잃어버린 그 10원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 이대로는 끝날 일이 아니구나"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오빠의 집요한 행동에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망설일 틈도 없이 그 돈을 원래 그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 찰그랑 재회의 기쁨을 맞보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을 통하지 않는 다른 문을 통해 마을 어귀로 도망치듯 나오는 발걸음이 바빴다. 일단은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오빠가 나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만 잘 넘어간다면 다시는 남의 것을 몰래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오빠가 나를 의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느새 나는 그렇게 간절한 일곱 살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장에 가셨던 엄마가 보따리를 이고 삽 적거래로 들어오셨다. 구세주였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왜 이렇게 무서웠을까? 나는 자주 도둑질을 해서 장작개비로 매를 맞던 두식이를 생각했다. 두식이는 그렇게 맞고도 남의 것을 잘도 훔쳐갔다. 그리고 매일 들켰다. 한두 번 들키면 안 하련만 들키고 싹싹 빌 고도 다음날이면 또 남의 물건을 훔치다 들켜 장작개비를 든 엄마에게 쫓겨 온 마을 골목을 숨바꼭질하고 다녔다.
오늘 내가 그 꼴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엄마 뒤에 몸을 반쯤은 숨기고 뒤 따르라는 걸음 뒤에 불안이 덕지덕지 따라 들어갔다.
다행히 누구도 잃어버린 돈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오빠가 모르는 체 이대로 넘어가려나 보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아무래도 궁금했다.
오빠가 돌아온 돈을 알긴 했는지, 그리고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몰래 사랑방에 들어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세니 130원이 맞았다. 궁금한 채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무 말이 없긴 했지만 오빠가 나를 의심하고 있는지도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안방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는 넷째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 언니 아까 오빠 잃어버린 돈 찾았데?” 그때 뒤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 돈?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잘못 세었더라. 130원 다 있었어. 사랑방에 귀신 없더라.”
맹세하건대 나는 그날 이후 남의 물건을 탐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