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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미 Dec 17. 2019

생활



그 밤 나는 아무에게도 구원받지 못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거리에서 나는 외로웠다. 게 값을 흥정하는 사람과 모객 하는 상인, 나는 축축한 수산시장 바닥을 밟고 서서 나에게 일어난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물고기들의 공동묘지에서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수습하려 한쪽 귀를 막고 필사적으로 통화에 매달렸다.



일이 일어난 건, 포항 죽도시장에서 홍게인지 털게인지를 맛있게 파먹고 있던 때였다. 지금 영덕대게는 없으니 이거라도 먹으라는 아주머니의 흥정이 있었고, 큰 게와 작은 게를 담은 소쿠리를 우리에게 바짝 내밀면서 이거면 충분히 먹어 싸게 줄게 하던 말에 시장 안쪽 식당에 자리를 잡았던 터였다. 좌식 식당이었는데 생선머리와 뼈를 담아둔 고무통에서 핏물이 흘러나와 나의 발이 젖어서 앞 사람과 자리를 바꾸어 앉았고 손질되어 나온 게를 신나게 파먹으면서도 양말로 스며드는, 누군가 잡아먹은 물고기의 핏물이 찝찝하던 차였다.



누구세요? 라고 묻는 문자가 연달아 도착했다. 누구세요 라고 묻는 그쪽이 나도 누구인지 몰랐으나 왜 그러세요? 답장을 보냈다. 이어서 온 카톡에는 내가 보냈다면서 문자를 캡쳐한 이미지가 도착했다. 나의 번호로 발신된 문자에는 결혼합니다 참석해주세요 하는 문구와 함께 링크하나가 걸려 있었다. 얼마 전에 내가 받은 문자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며칠 전, 나에게 그 문자가 도착했을 때 나는 누가 결혼을 하는가 궁금해서 링크를 클릭했었다. 청첩장을 열람하려면 프로그램을 깔라고 해서 순진하게 무엇인가 깔긴 깔았는데 끝내 웨딩의 주인공을 볼 수 없어 포기했었다.



호기심이 미끼가 됐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몇 안 남은 동년배 중에 또 누가 날 남겨두고 결혼을 하는지, 어쩌면 옛 애인일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과 호기심이 미끼였다. 나는 쉽게 낚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번호로 문자가 발송됐다. 그 중 몇은 나처럼 링크를 클릭했을 테고 미끼가 또 미끼를 물게 했을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나는 시끄러운 식당에서 나와 여기저기 통화를 시도했다. 스미싱 당한 것 같아요 어떡하죠? 나는 전화기 너머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매달릴 곳이라곤 그 휴대폰 밖에 없었다. 통신사와 불법스팸대응센터는 대응책만 알려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사무적인 방법들만 나에게 안내해줬는데 그 안내라는 것도 죄다 소 잃고 고치는 외양간일 뿐이었다.



그날 밤 수산시장에는 미끼를 물고 올라온 싱싱한 물고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직 죽진 않았지만 곧 죽을, 고기들이 수족관에 혹은 고무대야에 나열되어 있었다. 시장의 시작에서 끝까지 이어진, 살아 있는 인질들을 나는 보았다.



언젠가 물고기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그 바늘에 돈다발을 끼워서 인간을 낚는 그림을 그리려 한 적이 있다. 낚이지 않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수산시장과 같은 척박한 인간시장에서 거래되는 노동자일 뿐이고, 흥정도 없이 정찰제인 연봉 안으로 기어들어와 그 안에서만 뱅뱅 도는 인간일 뿐이다. 나의 가치를 내가 평가하지 못하고 미끼를 던지는 이들에게 뺏겨버린, 싱싱하지 않은 눈알을 달고 사는 노동자일 뿐이다. 미끼를 문 죄로 제 몸 구석구석 파 먹히는 게처럼 자유를 파 먹히는 인간일 뿐이다. 대체 누가 또, 결혼을 하는지 궁금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나에게 핏물이 흘러왔던 것은 낚인 동족을 알아본 물고기 귀신의 접촉이 아니었을까. 우린 오래 전, 바다에서 기어 나왔으니 잃어버린 나의 일부가 미끼에 걸린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었을까.



파 먹힌 자유를 돌려받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여기는 자유로우니까. 글로 연봉을 매기거나 등급을 나누지 않고, 누구의 컨펌도 필요 없다. 썼다 지우면서 내 마음대로 완성할 수 있다. 누구의 것을 뺏을 필요도 빼앗길 필요도 없다. 글 쓰는데 필요한 미끼는 내 몸과 기억이다. 나를 통째로 바늘에 걸고 기다린다. 시라는 사나운 이빨이 나를 물어주길. 그렇게라도 싱싱한 글 한 줄 써지길. 기억과 슬픔과 내장을 다 파먹고서라도 글 한 줄 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좋은 거다. 이건 자발적인 미끼다. 뜯기고 찢기더라도 자발적으로 바늘에 가 매달릴 수 있는 힘은 글이 아니면 내게 없다. 나는 통째로 미끼가 되는 것이지만 쓰면서 파 먹힌 자국을 지혈하는 것이다.



나의 번호는 도용됐다. 낚였다. 그 불안했던 밤, 보이지 않는 적군을 찾아 백방으로 동동거렸던 밤은 지났다. 나는 목 뒤에 바늘을 걸고 또 산다. 머리를 감고, 팬티를 빨고, 내 업무가 더 많다며 불평을 하며 생활한다. 피가 흘러가 누군가의 양말을 적시고 있는 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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