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쪼개진다.
매일 조각나는 하루를 붙이면서, 붙이려 하면서
허약한 풀칠을 하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살금살금 서재로 나왔다.
물을 끓여 커피를 타고 뜨거운 머그잔을 쥐고 의자에 앉았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조금 읽었다.
모든 소음은 꺼졌고, 어둑한 바깥으로 동굴같이 아침이 밀려오고 있었다.
키냐르는 이런 순간을 매일 맞이한다고 하던데,
누구와도 나눠지지 않는,
고독하면서도 경이로운 그런 하루의 한 조각을
매일 갖는 거겠지.
다시 책을 읽으려는 찰나
닫혀있는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잘못 들었겠지?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점점 분명해지는 울음소리.
시간은 6시 30분.
아기는 뒤척이다가 내가 없는 걸 눈치챈 것이다.
부랴부랴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나를 찾기 위해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다.
감기탓에 둔탁하게 새는 울음을 울고 있었다.
엄마 여깄어 엄마.
하고 들어가니
안방의 더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이불냄새, 잠냄새, 추울까봐 밤새 틀어 놓은 보일러의 온기,
나는 그 틈에 비집고 들어가 아기 옆에 누웠다.
아기는 그제야 안심한 듯 침대에 누웠다.
뒹굴뒹굴하다가
다당다당해줘요 하면서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나는 아기의 가슴, 내복 위 수면 조끼를 두드리며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에~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하면서 아는 구절만 부분반복했다.
아기는 잘다라 우리아가아아 하면서 노래를 따라불렀다.
하, 망했다.
평소 잠들기 위해 오래 뒹굴거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두드려도 아이는 잠에 들지 않았다.
결국 아이를 거실로 데리고 나와 기저귀를 갈고 사과와 삶은 달걀을 나눠 먹었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 지 계속 노래를 불렀다. 통통통통 털보 용감니임~
옷을 입히고 세수를 하고 콧물을 닦아주고,
또 콧물을 닦아주고, 또 콧물을 닦아주고,
도망가는 아이를 잡아 양말을 신기고
가방을 챙겨 어린이집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현관에 물이 뚝뚝 떨어져 있는 거다.
이게 뭐지?
아이 어린이집 가방에서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전날 밤에 아이 물병을 닦아놓았는데 신랑이 새벽에 아이 물을 챙기면서
보온 물병 안쪽 고무마개를 끼워놓지 않았던 것,
날이 추워져 새로 바꾼 보온물병의 마개를 신랑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시키는 일만 잘하는 남편에게 그걸 미리 말해두지 않았으니 결국은 내 잘못,
하아-
미지근한 물은 그대로 다 흘러내렸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겉옷을 입고, 문을 열려고 일자형 손잡이를 내리고 있는 아이를 두고
주방으로 가 가방 속 물을 쏟고, 물을 닦아내고, 고무마개로 다시 두껑을 덮고
물을 채워 담고,
손수건을 새로 비닐에 넣어 아이의 가방에 넣고
현관에서 엄마 엄마아~ 불러대는 아이에게
응, 금방 가 하면서
세수도 못하고, 겉옷만 걸치고 겨우 문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어린이집 앞에서 너무 일찍 깼고요, 콧물이 나고요, 가방에 물을 흘렸고요,
설명하면서 선생님과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거울로 확인도 못한 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는 척 가리면서
최대한 멀리, 멀리서 말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에 가득 찬 우편물을 찾았다.
선우가 시집을 냈다.
기특하고, 반가운 기분,
다시 책상에 앉으니, 읽던 책이 아득하게 보인다.
어디까지 어떤 내용을 따라가며 읽었더라?
삼분의 일쯤 남은 커피는 차갑게 식었다.
시간이 쪼개진다.
나는 쪼개진 시간을 풀칠하기 위해 차가운 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처음으로, 다시, 아까 그곳으로 돌아가가
똑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거실에 널려 있는 아이의 내복과 접시와 포크와 물에 젖은 손수건들에게 등을 돌려
조각난 시간을 풀칠한다.
이렇게 허약한 풀칠로 겨우 겨우 이어붙이다가
뚝 뚝 떨어져 단절된 시간들과
뭘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을까,
처음 가는 좁은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예고없이 통행금지 바리게이트가 나타난 것 같다.
후진으로 가기엔 멀고, 몸을 돌릴 곳도 없다.
여러 번 풀을 발랐다 떨어졌다 또 발랐던 이 시간은 너무 무겁고. 검고, 자꾸 찢어진다.
아믈랭의 우아한 유령을 듣는다.
얼마 전 연세대 교정에서 가을 빛을 받으며 걷던 여학생의 발자국에선 물방울 소리가 났었다.
어떤 발자국은 피이노 같다.
어쩌면, 그건
윤동주의 유령이 보낸 인사였을 지도
병원 창문 같은 하루 하루를 이어붙이며 살고 있는
이쪽 세계에 보내는
딱 한 번의 끈적한 마주침이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