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m Mystery's Cabinet No 3. 국가와 사회의 부재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부지런히 길을 걷는다. 닿을 곳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발을 쉬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람을 가지고 걷는다. 목적지에 왔지만 없었다. ‘복지국가’ 애기다.
작품집 속의 시간이 애매하다. [만등]을 제외하면 표제작인 [야경]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그랬다. 마지막에 수록된 [만원(滿願)] 은 구체적인 연도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현대는 현대지만 가상의 공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현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작가가 만들어낸 이 공간에는 사회나 국가가 잠들어 있다.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긴 하지만 약하다. 소극적이고 미미하다. 실체가 있긴 하지만 지독한 안개에 갇힌 느낌이다.
처음엔 야경(夜警)이라는 제목이 불러일으킨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야경(夜警), 야경국가. 책을 덮을 즈음엔 제목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회 속에서, 체제 속에서 살아가지만 개인은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체제는 겨우 숨만 붙은 채로 모든 일을 개인에게 떠넘겨버렸다.
[야경]에 등장하는 경찰(국가 권력과 시스템을 상징하는)은 늦다. 일이 벌어진 후에나 움직인다. 하물며 총을 쏘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경찰이 되기도 한다. [사인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다가 시체나 찾으러 온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는 건 개인이다. [석류]에서 법원은 중학생의 거짓말에 넘어가고 [만등]에서는 뇌물이 아니면 아예 국가건 시스템이건 작동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문지기]에 이르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 2016년, 지금이 보인다. 일본 사회를 그렸지만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렇게 국가나 사회가 떠나고 난 뒤에 남은 개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개인은 형체도 희미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만등] 시대착오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혀를 찼다.
미스터리 작품집답게 읽는 순간 팔등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늦은 밤에 읽다가 등 뒤에 한기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더 오싹하게 만들었던 건 국가와 사회의 부재였다.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곤 파편화된 개인뿐이라는 현실.
2016년 미국 대선. 예비 선거에서 버니 샌더스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야경국가’라 불리는 자유방임주의가 20C에 부활해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세계를 휩쓴 지도 꽤 되었다. 의료비와 교육비 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임금은 그대로다. 버니 샌더스는 ‘복지’를 강조한다. ‘야경국가’가 아닌 ‘큰 국가’를 말한다. 그의 약진이야말로 현재 미국 사회가 허약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힘들게 도착한 목적지에서 기대하던 것을 찾지 못했을 때의 좌절. 책을 덮고 나자 한숨이 났다. 찬찬히 생각을 정리했다.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가 그린 현대 일본 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았다. 그런 다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우리에게도 ‘버니 샌더스’ 와 같은 인물이 필요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P.S: 책과 함께 하면 더 오싹할 영화 추천
[빅쇼트] / 2015/ 미국/ 아담 맥케이 감독
여기서 국가와 사회는 한 술 더 뜬다. 차라리 [야경]에서와 같이 없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대놓고 국민을, 개인을 등쳐먹는 시스템이라니.
알고 있다고 해서 충격이 덜 한 건 아니었다. 2008년의 일이라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빅쇼트]를 먼저 보고 [야경]을 읽는다면 오싹함이 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