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am Mystery Cabinet No4.
요시다 슈이치
이영미 옮김
60~70년대 한국영화가 떠올랐다.
소설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절절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되어서 일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소설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붙여 넣기 한 것처럼 변화 없이 흘러간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끊임없이 행운이 작동해야 가능하다. 한 발만 아니 살짝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불운은 예고도 없이 폭풍처럼 몰려온다. 신문 사회면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독한 이야기들이 업데이트된다. 기사 제목은 하나같이 자극적이다. 사람들은 사고로, 혹은 우연히 죽고 다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문 사회면이다. 내 일이 아니다. 내 주위의 누구의 누가 아는 사람에게 불운이 닥쳤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 뿐이다. 역시 내 일이 아니다.
요시노와 그녀의 부모 역시 그랬다. 경찰에게서 듣는 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부모가 아는 딸은 절대 그런 여자가 아니다. 요시노는 적당이 속물적이고 가볍다. 그렇다고 그것이 살해당할 일은 절대 아니다.
유이치도 그의 조부모 역시 그랬다.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내 손자가 살인자라니. 요시노는 유이치를 무시하고 협박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람을 죽일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미쓰요도 그녀의 여동생도 그랬다. 살인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사람을 죽였다니. 자수하겠다는 사람을 막고 함께 도피생활을 시작하다니. 그렇다고 그녀가 미친 것은 아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이거나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간혹 나 혼자 있다가도 주위를 살피게 된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책을 덮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새삼 일상이 위대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의 ‘나’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지 실감하게 된다.
누구든 ‘악인’이 될 수 있다. 지독한 ‘불운’을 만나지 않더라도. 고개만 돌려도 그럴 위험이 얼마든지 널려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한다. ‘선’이든 ‘악’이든 그것을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유이치는 자신의 잘못을 엄마가 혹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악’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오지랖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악’은 그가 아니라도 충분히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 구조의 가장 위에서 자신들의 발아래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지배한다. 복잡하고 교묘하며 합법적으로까지 말이다. 그러고는 말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P.S: 책과 함께 하면 더 기막힐 영화 추천
[데드풀] / 2016년/ 미국/ 팀 밀러 감독
[악인]의‘미쓰요’는 자신은 ‘행운’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딱 한번 친구가 약속을 깨면서 ‘행운’을 경험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드풀’을 보면 ‘행운’과 ‘불운’이란 것이 한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확실하게. 영화가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데드풀’의 미국식 유머와 수다만 머릿속에 남는 것 같지만 아니다.
결국 ‘행운’이든 ‘불운’이든 자신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악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책을 꼭 같이 볼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