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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수 Apr 11. 2016

좋은 스테이플러

 낯선 경험이라기에는 그 반복이 너무 잦았다. 한쪽 심만 엉뚱한 방향으로 일그러져 있는가 하면, 심의 어느 쪽도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해 붕 떠있기도 했다. 그렇게 심은 버려지고, 종이는 망가지고, 마음은 상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스테이플러에도 좋고 나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스테이플러에도 좋고 나쁨이 있었다. 어쩌면 스테이플러가 나쁘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을 할 수가 없는 영역의 일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지난날의 스테이플러들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는 있겠지만, 함께 하는 순간에는 한번도 좋은 스테이플러라고 생각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가 있다. 스테이플러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 어떻게 나쁜 스테이플러가 있겠냐 싶었지만, 스테이플러에도 좋고 나쁨이 있었다.


 이런 경험이 어쩐지 낯설지만은 않았다. 당연히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의, 너무나 필수적이라 그 결핍을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것을 고를 때 산소를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너무 중요해서 그 결핍을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은 대개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던 것이다. 중요해서 꼭 갖추어야 할 것들은 기본적인 것이 되고,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잊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필수적이고 당연한 조건이라서 언급을 생략하는 사이에 그 중요성이 점차 희미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그 희미함을 뚫고 중요한 것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쁜 스테이플러를 만나게 되면 그제서야 지난날의 좋았던 스테이플러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중요한 것들은 그 결핍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스테이플러에도 좋고 나쁨이 있었다. 이제는 알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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