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원망
"이런 거는 이제 언니가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사촌동생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짜증도, 배려도 없는 표정으로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쏘아붙이기엔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우스웠고,
웃어 넘기기엔 마음이 이미 많이 닳아 있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힘든 건 영어였다.
특히 전화 통화.
손짓 발짓이라도 하면 될 것도 같은데
상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화 영어는
항상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집 인터넷이 말썽이었고,
업체에 전화를 해야 했다.
상황을 설명하려다 보면 단어는 혀끝에서 엉키고,
상대의 말은 절반도 알아듣지 못한 채 통화가 끝나곤 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촌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더 편한 아이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다 네 아빠 때문이야.'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불러들인 건 큰아빠였다.
잘 될 거라 했고, 기회라고 했다.
믿어도 된다고 했기에 그랬을 뿐이다.
우리 가족은 너무 순진했고, 너무 급했다.
그렇게 덫에 걸려들어 이 꼴이 났다.
"당분간은 네가 도와줘야지. 어쩔 수 없잖아."
참고 참다가 겨우 내뱉은 내 말에
사촌동생의 얼굴에 노골적인 짜증이 스쳤다.
"근데 큰아빠는 또 안 계셔?"
그 사람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나도 더는 참지 않고 한마디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오늘도 집에는 없는 모양이다.
큰아빠는 우리를 참도 잘 피해 다녔다.
"언니, 이제 인터넷 잘 될 거야. 그리고 나 이제 바빠."
쌀쌀맞은 사촌 동생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우선은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은 거짓말처럼 다시 연결되었다.
문제는 늘 이렇게,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해결되고는 했다.
그게 참 많이 서러웠다.
미국에 오면 영어쯤은 금방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내가 맏딸인데
내가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생각만큼 당당하지 못했다.
여기서 도대체 언제까지
남의 도움과 눈치를 빌려
살아야 하는 걸까.
원망만 잔뜩 묻은 질문만 남긴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