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

1화, 비자 스템프의 무게

by 한은진

2001년 봄, 우리 집은 온통 비자 준비로 들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빠만 들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우리는 서울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밖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봄날의 햇볕은 뜨거웠다.

엄마는 서류를 반복해서 확인하고, 아빠는 여권과 신청서를 몇 번이나 들춰봤다.


"서류 잘 챙겨온거지?"

"응, 어젯밤 잠 한숨 못잤어."


엄마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져 있었다.


나는 아직 미국이 뭔지 잘 몰랐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취업만 하면 됐었다.

어른으로 살아갈 한국에 기대감이 컸었다.

왜 미국에 가야하는지 몰랐다.

떠난다는 생각은 나를 조금도 설레게 하지 않았다.


드디어 우리 순서가 왔다.

아빠는 긴장한 얼굴로 창구 직원에게 서류를 건넸다.

직원은 무표정하게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며 질문했다.


"학교와 직장은 확인했습니까?"

"네, 모두 준비했습니다."

아빠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직원은 표정 한 번 바꾸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후, 우리는 대기실에서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심장이 뛰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인터뷰때 실수한것은 없는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비자가 승인되었습니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아빠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 서진이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야."

우리를 위해 이민을 간다는 아빠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지만

그럴수록 더 복잡한 마음만 커졌다.


'아빠의 사명'에 우리의 미래를 끼워넣는 기분이랄까.


'이제 진짜 가는구나'


아파트 단지 화단에 개나리꽃이 많이도 피었다.

미국에도 개나리꽃이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한국의 봄은 노란빛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