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미국 마트에 가다.
2001년 봄,
몇일이나 지났을까.
이곳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다.
끝없이 펼쳐진 주차장은 마치 공항 활주로 같았다. 회색 아스팔트 위로 햇빛이 번들거렸고,
거대한 건물이 그 끝을 막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냉기가 얼굴을 스쳤다.
안은 상상을 초월했다.
시리얼 진열대는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색색의 과자와 음료수는 마치 작은 유토피아처럼 반짝였다.
나는 한참을 서서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읽으며 이름도 모르는 음식들을 구경했다.
"이건 무슨 맛일까?"
"이건 어떻게 먹는거야, 언니?"
낯선 것들 앞에서 서진이는 많이 들떠 있었다.
"은진 아빠, 이게 한국돈으로 얼마지?"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자꾸 가격표를 비교하며 물었다.
"당신이 좋으면 사, 이제 계속 여기 살아야 하는데, 뭘 고민해."
"그래도 한국보다 많이 비싼거 같아서..."
엄마는 작게 답하며 물건을 들었다 놨다 했다.
"이거 우리 서진이가 좋아하는거네."
아빠는 엄마말이 들리지 않는 듯 카트를 가득 채웠다.
마치 나와 서진이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두 손 가득 사들고 퇴근했을 때처럼.
그렇게 커다란 철제 카트에 물건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덜컥거리는 바퀴 소리가 묘하게 커졌다.
줄이 길었다.
앞사람들이 계산을 마칠 때마다 '삑, 삑'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렸다.
속으로 'Hello' 를 여러번 연습했다.
계산원이 나를 보고 웃었다.
"Hello!"
이 한마디를 하는데도 나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계산대 위에 물건들이 지나가고, 스캐너의 빨간빛이 하나씩 스쳤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Buy one, get one free!"
'Buy, 사다. 그런데 Free 라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가 공짜라는건지 알수가 없어,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계산원은 잠시 나를 보더니, 말없이 봉투에 물건을 담았다.
서진이는 뒤에서 킥킥 웃었고 아빠는 계산이 끝난 봉투를 들며 나에게 물었다.
"공짜래?"
나는 얼버무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곳에서...영어를 못하면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