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글

적자생존, 기록해야 생존하는 나란 사람

by 작은산

연말이다. 연말이 되니, 연초에 내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던, 올해 목표가 떠올랐다. 책을 내겠다고 했다.(ㅎ 니가?) 한 주에 한 개의 글을 써서 그것들을 모아 모아 원고로 준비하겠다는 그 오만한 포부는.. 그렇게 준비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해 보겠다는 객기는.. 뭐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고.. 투고할 원고조차 모으지 못한, 그냥 말만 앞선 항상 봐온 낯익은 내 모습.. 익숙해.. 괜찮아. 대단한 것 하나 없는 대한민국 충남에 소재한 회사원 y 씨에게는 당장 이번 달의 행사 준비나 보고 준비가 더 시급했기에, 가족들의 안위와 우리 집 어린이들 케어가 더 먼저였으므로, 글로 내 삶을 정리하는 개인의 시간은 자꾸만 후순위로 밀려 이제는 참.. 한 땐 되게 친했었는데, 이제는 가끔 마주치면 어색한 미소로 인사만 하는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솔직히는 그 문을 다시 열기가 엄두가 안 났다. 글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버렸기 때문이다. 문을 열면, 열자마자 우르르 쏟아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태. 내가 유능해서, 써야 할 이야기들이 막 샘솟아서 쌓인 게 아니라, 기록해 봄직한 사건과 이벤트는 계속 생기는데, 지금은 못해, 일단 네임택만 붙여! '묻지 마 보관식'으로 창고에 쌓아놓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글감 창고에는 이제 이게 당최 언제 적 글감인지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한, 몇 개는 곰팡이 피고 어떤 것은 이건 뭐더라.. 싶은 용도불명의 것. 그냥 총체적으로 하얀 먼지가 고-옵게 덮인 상태가 되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 할까. 가장 오래된 글감부터 써볼까.. 맨~ 밑에, 맨~ 끝에, 맨~ 구석에 있는 짐부터 다 꺼내 다시 정리하려면.. 방금 생각만 했는데도 두통이 오는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체력이 없다. 오늘도 정말 오랜만에 주중 연차(라 쓰고 재택근무라 읽는)를 썼는데, 밥 해 먹고 밀린 집안일 조금, 집안살림 구매, 뜨문뜨문 연락 오는 회사일, 주말일정, 아내와 대화(사무적인 대화 말고, 마음의 안부를 묻고, 감정을 소통하는 대화는 너무도 오랜만)도 해야 하고.. 그리하여.. 내게는 내 삶을 지금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우선 오늘은 딱 2시간여. 그래서 지금은, 가장 위에 쌓아둔 글감들을 먼지만 살짝 털고 보이는 곳에 진열하는 시간으로 가져볼 생각이다.


그리고 살짝 부끄럽지만 1주 1 글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글로 내 시간을, 사건을 적을 때가, 그 기록하는 행위를 할 때가 나는 가장 살아있는 기분이다. 일단 쌓인 글감들을 리스트로 정리해 본다.


1. 11살 아들과 11일의 유럽여행

2. 내가 아들에게 유럽에서 가장 보여주고픈 것은 모나리자가 아니었다.

3. 달항아리를 아시나요?

4. 퇴직금을 몽땅 땡겨 집을 부수었다.

5. 어린이 축구교실에서 마주친 뜻밖의 인생명언들

6. 나는야, 맛집 감별사

7. 여행자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8. 귀멸의 칼날을 보고 "말싸움 백전백승"하는 법을 알게 됐다

9. 쑥스러움은 나의 무기

10.윤진우의 일곱 단어 (7부작 대서사 ㅋㅋㅋ)


감사 -이미 이긴 삶

포용 -작은 산처럼 넓게 품는다

일치 -인테그리티

인내 - 결국 아기가 나와야 없어지는 산고처럼

루틴 - 매일매일 계획대로 그러나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죽음 - 그 무엇보다 심플해지는 마법의 단어

사랑 - 왜 사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제목들을 달아서 적어두니, 쌓인 먼지를 털고, 보기 좋게 선반에 정렬해 둔 것 같아 뿌듯하다. 이 중에서 일단 쓰고 싶은 글들을 하나씩 써보겠다. 일단 이번 주 1주 1 글은 이 글로 퉁친다.(왜.. 뭐.. 내맘..)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기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