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어린이가 틴에이저가 되면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태권도, 피아노, 수영 말고 "공부"하는 학원. 하루,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2배 이상 급증하다 보니, 살이 포동포동 찌기 시작했고, 나와 아내 모두 초등시절 경도비만 출신이기에(ㅎㅎ..) 비만 유전자발현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꾸준히 계속 시키기로 했다.
원래 다니던 축구교실 취미반을 집에서 더 가까운(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다른 축구교실 선수반으로 옮겼다. 시간대가 선수반 말고는 없어서, 선수가 될 것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축구교실 옆에 헬스장이 있어서 어린이가 축구를 할 동안 나도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항상 끝무렵에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 축구교실의 취미반과 선수반은 매우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선수반에는 우리 집 어린이와는 다르게 진짜 축구선수 같은 친구들이 있었고, (이미 초등학생의 실력을 넘어선.. 나보다 더 빠르고 슛 잘 때리고.. 그런..) 감독님과 코치님들도 굉장히 디테일한 가이드와 코칭을 해주셨다. 골을 넣어도 칭찬은 거의 없었고 (취미반은 칭찬 겁나 많이 해줌..) 오히려 질책(?)이 많았는데, 아직 어린애들한테 이렇게까지 다그쳐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몰아세울 때도 있었다. 근데 재밌는 건 아이들이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감독코치님들과 선수반 어린이들 관계가 이미 신뢰감과 라포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놀라운 것 하나 더, '칭찬의 포인트'가 그 과정을 만들어가는 부분에서 잘한 부분을 칭찬해 주지 결과를 칭찬해주지 않는 부분도 꽤 놀라웠다.
연습경기임에도 매번 긴장감 넘치는 실전경기 같았다. 그렇게 매주 연습경기를 지켜봤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계속해서 얼굴이 핏줄이 설만큼 고래고래 외치며 오더와 피드백을 주는데, 게임을 뛰는 어린이들에게 주는 그 오더와 피드백들이 뭔가 나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공을 봐! 어디 보냐 공이 어디로 가는지 보라고!!"
> 본질을 보라는 얘기로 들렸고
"이놈들아, 공만 쫓지 말고 사람 쫓아라, 자기 사람을 막아"
> 시시각각 변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을 쫓으라는 얘기로 들렸고
"너네 힘들다고 말 안 하냐? 서로 말 좀 해라 계속 말해, 말하면서 해야 돼!"
>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일하라는 얘기로 들렸고
"야 공격이 끝나면 끝이야? 바로 수비 가담해 주란 말이야! 힘들어? 안 뛰어?"
> 지금 네가 편하다면, 편한 만큼 누군가는 힘들다는 얘기로 들렸고
"야! 움직여! 움직여야 공간이 나오지!"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로 들렸고
"쉽게 해, 쉽게. 뭘 그렇게 어려운 길로 가냐."(수비가 빽빽한 곳으로 패스를 준 아이에게)
> 프레임에 갇혀 있지 말고 삶의 시각을 넓혀라 로 들렸고
"공이 오잖아, 오기 전에 던질 곳을 미리 봐 던질 곳을 정해놔, 오면 바로 던지게!"(잡은 공을 어디로 줄지 망설이는 골키퍼에게)
> 시뮬레이션을 생생하게 돌려서 다음 스텝을 미리 계획, 불필요한 소요를 최소화해라 로 들렸고
"공은 뺏기면 그냥 다시 뺏으면 돼. 뺏긴 걸 마음에 담지 마 잊어 인마"
> 실패는 너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니, 멘탈 챙기고 될 때까지 다시 시도해.로 들렸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목표(goal)를 두고 합의된 룰 아래에서, 같은 팀과 합력하고 상대팀과 경합을 하며 좋은 경기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것. 그것은 우리 인생과 너무나 흡사해서 이 경기장 안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외침이, 객석 한 구석에 쪼그려 앉은 곧 마흔 살 아재에게조차 삶의 잠언으로 다가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건가 싶다. 선수는 아니지만 선수반에서 열심히 뛰는 우리 집 어린이처럼, 나도 내게 주어진 경기에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임해야지.. 우리 팀(일터 가정 지인 등)에 좋은 선수로 남아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