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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n 14. 2021

세상 끝에서 만나고 싶은 책방이 있다면

_ 책방 <국자와주걱>에서 보낸 꼽꼽한 시간들


 남편이 한창 클라이밍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 산악회 등반대장의 결혼식날, 결혼식 간다는 사람 복장이 등산복이다. 장소가 북한산이라 했다. 북한산에서 결혼식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결혼식도 그렇게 특별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만장굴을 처음 발견한 부종휴 선생도 한라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했다. 앗, 나랑 독서 모임 같이 하는 영미 언니도 산 좋아하는 형부 때문에 산에서 결혼식을 했다던가? 이거, 나만 모르게 주말마다 산에서 잔치상 차리는 거 아니야?


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결혼식 올리는 것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결혼식 올리고 그러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은 꽤나 많은 편이지만, 그런 결혼식 이야기는 풍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다. 요시타케 신스케도 그런 상상을 했던 모양이다. 『있으려나 서점』에서 “서점 결혼식”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점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두 사람이 읽어 온 책들을 소개하고 서점에서 처음 만난 순간을 재현하는가 하면 케이크를 자르는 대신 책갈피를 끼우는 행사를 하고, 부케 대신 책을 던진다. 이런 이상한 책방의 이상한 결혼식,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은데. 다시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고, 누구 혹시 책방에서 결혼할 생각이시라면 저도 꼭 좀 초대 부탁드립니다. 적당한 책방이 생각이 안 나신다고요? 강화에 있는 책방 <국자와주걱>은 어떨까요?      


<국자와주걱> 괴산의 <숲속책방>과도 이어져 있고, 같은 강화의 책방 <시점>과도 깊은 인연을 품은 곳이다. <숲속책방> 두 분 선생은 <국자와주걱> 김현숙 선생과 아이를 같은 대안학교에 보낸 인연이 있다. <숲속책방> 열었을  온갖 잡다한 도움을  받았다 한다. 책방 <시점> “우엉 강화 김현숙 선생 아들의 친구였다. 책방 <시점> 강화에 자리잡은 것은 <국자와주걱> 김현숙 선생이 새로 집을 지으려던  사람에게 좋은 땅이 났다고, 보러 오라고 종용한 덕이 크다. 오지랖이 넓다고 흉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것이 바로 김현숙 선생의 넘치는 매력인  같다. 남의 일도 그저 남의 일로 보지 않는 ,  일도 우리 일로 만드는 ,  사람  사람 엮어서 우리로 모아 가는 능력을 지녔다.(이렇게 얘기하면 되게 친한가, 오해하실  있는데 그저 페이스북 열심히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 주워들은  인연의 전부다.) 어쩌면 마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 거기가 바로 <국자와주걱>이다.



벌써 13년, 사람들에게 지어 준 따뜻한 아침밥만 해도 엄청날 것 같다. 보시 중의 최고는 밥보시라던데, 함민복 시인이 이 책방의 이름을 난데없이 <국자와주걱>이라고 지은 데는 다 이런 깊은 뜻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얘 이름은 요리야, 요리! 엄청 커.”


아이는 책보다 고양이에게 더 마음을 쏟고 있다. 이제 예닐곱 살쯤 되었다는데, 처음 보는 어린이가 자기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도 싫은 내색 한번 않는다. 책방지기가 방석 위에 턱하니 자리 잡고 앉은 “요리”를 그런 자세로 바깥으로 내가는 걸 보고는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다. 귀찮을 법한데, 발톱을 세우지도 않고 아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 다정하고 친절한 고양이.

늦가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책방 거실에 앉아 그림책을 읽어 주는데, 고양이는 발치에 앉아서 가르랑가르랑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고, 아이도 그런 고양이를 한없이 쓰다듬으며 그림책을 들여다본다. 아이가 고른 그림책은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엄마가 만들었어』다.


“이거 집에 있는 그림책이잖아. 딴 거 읽어 줄게.”

“아니야, 싫어. 지금 이거 보고 싶어.”


어린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다. 토 달면 안 된다. 집에 있는 책이지만 집에서 읽는 거랑 <국자와주걱>에서 읽는 거랑 어찌 같은 기분이겠는가. 암요, 암요.               

집에서 읽을 때도 번번이 훌쩍대고 마는 그림책인데, 밖이라고 다르지 않다. 엄마가 남자 양복을 입고 아빠들 틈에 서 있다가 “엄마가 만들었어” 속삭이는 대목에 이르면 여지없다. 훌쩍거리는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엄마, 괜찮아?” 묻는다. 상냥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런 이야기들이 다른 이의 결핍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힘을 길러 주리라 믿는다. 이래서 그림책은 정말 좋다.      


통유리창으로 가득 쏟아지는 햇살도 좋고, 오래된 집에서 나는 고즈넉한 나무 냄새도 참 좋다. 고스란히 드러난 서까래도 멋스럽고, 뒷마당에 엉겨 있는 마른풀들의 서걱거림도 좋다. 지어진 지 90년도 더 됐다는 집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막 신난다. 오래된 집에 깃든 세월의 흔적들 덕분에 남의 집 같지 않고, 손님 같지 않고, 꼭 어릴 적 외갓집에 와 있는 느낌이다. 마른 꽃잎을 넣어 마감한 창호지도 멋스럽고, 별다른 가구 없이 정갈하고 심플한 아담한 방도 쾌적하다. 등은 뜨끈뜨끈하고 코는 시린, 시골집의 밤. 이런 집을 통째로 우리 식구만 누릴 수 있다.


자려고 누운 아이가 말한다.

“고양이 입양하고 싶어.”

아무래도 “요리”가 아이에게 너무 잘해 준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 할아버지가 강아지나 고양이, 거북이나 물고기 같은 동물 주시면 좋겠다.”

동물은 ‘사는’ 게 아니라 ‘입양’하는 거라고 몇 번 말했더니, 사자고 하지 않고 입양하자 말한다. 그 어려운 일을 어찌 해내려는지. 나는 자신이 없는데 아이는 한사코 동물을 키우고 싶단다. 두 달도 넘게 남은 크리스마스 이야기까지 해 가며.      


“이 책은 어느 작은 책방의 수수께끼 같은 주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히구치 유코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책방』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방의 주인은 고양이다. 벌써부터 흥미진진! 괴물이 튀어나오는 책으로 장난을 치려는 개구쟁이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금붕어 손님들이 오는가 하면, 어쩌다 아기 고양이를 기르게 된 외눈박이 한무리가 찾아오기도 한다.


헝겊 인형 “양코”와 “아노말로”가 이 멋진 책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밤이 되어 보는 이가 없어지자 의자들이 죄다 다리를 뻗고 쓰러진 장면이나 축 늘어져 잠든 테이블을 목격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낮 동안 손님들에게 시달린 의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정하게 재워 주는 헝겊 고양이 “양코”는 책방을 떠나면서 “덕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는 걸 알았어요.” 하고 기특한 소리를 한다.


책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바로 이런 뜻밖의 깨달음이 있어 즐겁다. 책방 주인도 떠나고, 하룻밤 책방을 떠안게 된 손님들은 낮 동안 소요했던 공간에 가득 들어찬 침묵과 책들의 내뿜는 차갑지만 다정한, 서늘하면서도 촉촉한 기운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게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책을 발견하고, 평소라면 쳐다보지 않았을 주제의 책이라도 호기심으로 들춰 보게 된다. 불을 켜지 않고 달빛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엄청난 행운이겠다.      


“엄마, 나 요리 보러 갈래!”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달려나간다. 우리가 잔 방은 책방에 딸려 있는 작은 방이었고, 부엌으로 쓰는 별채는 문을 열고 나가 마당을 가로질러야 한다. 고양이는 부엌에서 밤을 보냈다.  


신나게 달려간 아이를 고양이도 반갑게 맞는다. 다리를 맴돌며 냥, 냥 우는 고양이에게 물을 주려고 싱크대로 향하는데 이런! 한가득 똥을 싸 놓았다. 고양이 화장실이 안에 따로 없어서 생긴 일 같다. 어제 밤에 밖에서 자라고 내놨어야 하나. 날이 추울 것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에 부엌에 들여놨더니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 아이에게 밥을 챙겨 주라고 하고, 고양이 똥을 치우려는데 아뿔싸! 사료 주기 전에 손을 씻겠다고 싱크대로 간 아이가 고양이 똥을 밟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똥을 밟고 당황한 아이는 신발 바닥을 질질 끌며 부엌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거기, 가만 있으라고!”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가고 말았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똥 한 덩어리 치우면 끝날 일이었는데, 부엌 바닥도 닦아야 하고, 아이 운동화까지 씻어야 하는 큰일이 되고 말았으니 나로서도 유감천만이었다. 아이도 고양이도 내 눈치만 보고 있다. 겨우 수습하고, “이제 사료 줘도 돼.” 했더니 금방 헤헤거리며 “이거, 간식 하나만 주면 안 돼?” 한다. 어제 책방지기 허락을 받고 주었던 생선맛 나는 간식을 주고 싶은 것이다. 아이도 고양이도 간절한 눈을 하고 나를 보고 있다. “밥 먹기 전에 간식 먼저 먹으면 안 돼.” 고양이 육아도 어린이 육아만큼 힘겨운 일인 것 같다. 이런데 어떻게 입양을 하겠냐고요.     

 

아침 먹으러 <큰나무카페> 가는 길에 잠깐 동네 산책을 한다. 바람은 상쾌하고 하늘은 시리게 푸르다. 감사한 아침이다. 집들은 다정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성격이 보이는 마당 구경도 재미나다. 그러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만났다. 아이 눈을 가리고 손을 이끄는데, “엄마, 왜? 뭐야?” 궁금해서 난리다. 이런 걸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좋은 걸까, 아니면 이렇게 숨겨 주는 게 좋은 걸까. 감춘다면 또 언제까지 감춰 줄 수 있을까?


“나도 볼래. 보여 줘. 보고 싶어.”


아이는 안달했지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동물들의 공간에 사람들이 허락도 없이 쳐들어와 집을 짓고 길을 내는 통에 정작 그곳의 주인이었던 동물들은 속절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추고 싶었다.


아이 눈을 감긴 채로,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살뜰히 챙겨 꿰매 주고 이어 준 뒤 꽃배에 띄워 보내는 할머니가 나오는 그림책 『잘 가, 안녕』 이야기를 했다. 아이도 여러 번 본 그림책이라서 잘 알고 있는 책이다.

“엄마, 그 할머니가 여기도 오시면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큰나무카페>에서 먹은 귤차는 참으로 훌륭했다. 발달장애인들이 만들었다는 당근케이크도 맛있었고 무화과 치아바타 역시 건강하게 몸에 스미는 느낌이었다. <국자와주걱>만이 아니라 <큰나무카페>가 있어 이 마을이 더욱 따뜻하고 귀한 곳이 되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기운으로 모여들 수 있게 하는 힘, 그 역시 책방지기의 마법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 김금숙의 책 『기다림』을 이 작은 책방에서 200권이나 팔았다 한다. 이제는 전 세계에 이름이 드높아져 사고 싶어도 작품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미경 작가에게 선물받은 그림이 책방에 턱 걸려 있는 것도 책방지기의 힘이겠다. 이 작고 외진 책방에서 이미경 작가의 구멍가게 책은 300권도 넘게 팔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나눠 주는 동시에 좋은 기운을 책방으로 모아들이고 있는 굉장한 곳, 바로 책방 <국자와주걱>이다.   

   

이번 강화 나들이 때는 <딸기책방>도 둘러보고 어찌나 요란하고 시끄러운지 궁금해진 <조양방직>도 구경하고, 김포 대명항에 들러 꽃게랑 새우젓도 샀다. 알차게 보낸 1박 2일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오직 한 가지, “요리”뿐이었다.


“엄마, 우리 고양이 보러 또 가자!”

그래 그래, 또 가자, 꼭!      


_ 아이가 그린 “요리” 모습. 아직은 글씨를 거꾸로 쓰는 일곱 살 어린이다.

 

* 국자와주걱

인천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428번길 46-27

blog.naver.com/sigolstay    

 

#북스테이 #국자와주걱 #강화책방 #동네책방 #책과함께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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