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렇게 오늘을 산다.

죽지 않았으니 어쩌겠어

by 스몰플레져

아, 진짜 짜증 난다...

입에서 한 움큼의 피가 왈칵 쏟아지는 순간 처음 든 생각이었다.


2년 만이었다. 솔직히 이제 다시는 식도가 터지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터져대던 식도가 잠잠하길래, 압을 받으면 식도가 터지는 병이라 한동안 비행기도 못 탔으니 이 정도면 한 번 시험 삼아 가까운 거리에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던 중이었다.

피를 토하고선 숨이 안 쉬어져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창문을 열고 호흡을 하는 동안, 남편은 혹여라도 내가 정신을 잃을까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가며, 뒤에서 엄마 죽는 거 아니냐며 울음 참는 아들을 달래고,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아들을 친정에 내려놓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고 나는 또 입원을 했다.


이번 내시경은 유난히 힘들었다. 식도 출혈이 있는 사람은 수면마취를 시켜주지 않는다. 내 눈으로 똑똑히 내 입에서 토해지는 피를 보면서, 6번이나 그 굵은 관이 내 몸속에 넣어졌다 빠졌다 하는 걸 애써 참고 있는데 의사는 자꾸 여기서 실패하면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고 혼을 냈다. 중환자실에 가면 어떻게 처치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럴 바엔 그냥 중환자실에 가는 게 낫겠다 생각하며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시술이 끝났다. 지겹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처음이 제일 쉬웠고, 반복될수록 더 힘들고 무서운 일이 되고 있다.

그래도 10년 넘는 환자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상당히 잘 참아내는 편이었다. 약한 항암치료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왕창 빠져도, 이유 없는 심한 빈혈로 반은 누워 지내면서도, 조금만 무리하면 식도가 터져서 응급실에 달려가면서도 그럭저럭 일상을 남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려고 애써왔다. 사람들도 이렇게 큰 일에 대담하고 덤덤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도 모르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 앞에서 이번에는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의사는 관련 없다고 했으나, 대여섯 번의 이런 일을 겪는 동안 내 나름대로 이럴 때면 식도 출혈이 생긴다고 세워 봤던 가설이 이번에 다 무너졌다. 나는 애초에 식도정맥류가 생길 이유가 없는 환자였다. 간수치는 늘 정상범위였고, 간경화 말기도 간암 말기도 아니다. 루푸스도 신약을 맞고 나서는 많이 좋아져서 혹시라도 루푸스와 식도정맥류가 연관이 있다면 이제 그래도 갑자기 응급실 갈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더욱더 예측불가인 상황이 되어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또 내가 피를 토하며 쓰러질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이제는 이런 시술로 출혈 부위를 집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고, 그다음 시술은 치매와 비슷한 간성혼수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픈 사람은 늘 미안하다. 나의 몸이 아프고 마음이 꺾여도 가족들 앞에선 다 보일 수가 없었다.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입원은 늘 보호자가 출입할 수 없는 간호간병통합 병동에 들어가 혼자 지내곤 했다. 이번엔 어쩌다 보니 일반 병동으로 들어갔는데, 위내시경을 끝나고 병실에 올라왔을 때 상의가 피범벅이 된 채 힘 없이 지쳐 누워있는 나를 보던 아빠의 눈빛. 이제 열 살인 아이는 뒷좌석에서 엄마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았고, 그 와중에 눈물을 꾹 참아가며 씩씩하게 할머니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의 엄마는 이럴 때마다 나를 대신해 두 배의 집안일을 해야 한다. 남편은 이번 연휴에 혼자 내내 아이 둘과 나 없이도 예정했던 스케줄을 소화해 가며 엄마 없는 빈자리를 채웠다. 나는 크리스천인데 답도 없는 병으로 아픈 게 때론 안 믿는 사람들에게 흠이 될까 봐 눈치가 보이고, 내가 아프다 힘들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건 유난이고 민폐 같아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환자인 게 미안한 일이 되는 것도 언제까지 해야 할까?

7일 동안 입원을 했다. 공교롭게도 의료파업에 긴 연휴까지 맞닥뜨려서 그 기간 동안 의사는 거의 만나질 못했다. 일이 벌어지는 순간은 자칫하면 생사를 오가는 일일지라도 시술을 해서 출혈 부위를 잡고 수혈을 몇 팩 하면 허무하리만큼 나는 또 정상인 사람이 된다. 병원에서 주사를 팔에 꽂은 채 금식 미음 죽 밥으로 단계를 올려가며 별다른 치료는 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퇴원을 하라고 했고, 나는 양팔 양다리에 주사로 인한 멍만 주렁주렁 달았을 뿐 멀쩡한 모습으로 병원을 나왔다. 의사를 아무리 만나도 어차피 예방법도 해결책도 없다. 정말 거지 같은 병인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루푸스 확진받은 지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이 병과 친해질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단순해서 빨리 잊는다는 것이다. 이것도 내 병에 맞춰 하나님이 미리 정해주신 나의 성격인 걸까? 그렇게 원망스럽고 절망적이고 기도도 안 나오고 성경책 한 번 못 펴 본 시간이었지만, 한 주가 지나니 마음도 몸처럼 또 괜찮아졌다.


병원에선 항상 지금 당장 죽어도 세상에 남을 미련도 없고 죽음이 두렵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애들이 있다. 그것도 건강한 사람도 힘들다는 아들만 둘이다. 남들보다 일찍부터 죽음을 생각했다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 오늘 하루를 더 소중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아이들 덕분에 버틴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게 힘들어도 나에게 아들이 둘이나 있는 이유라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어서.

어쨌든 나는 이번에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지만, 죽지 않고 퇴원을 했다. 인간이라는 게 본래 나약하지만 또 생명은 생각보다 질기다 하더니 퇴원한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상 속에 돌아와 있다. 어쩔 수 있나? 그냥 사는 거지 뭐.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대단한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just do it과 존. 버. 나는 또 그렇게 오늘을 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