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

어쩌면 그리 큰 차이가 아닐지도

by 스몰플레져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궁금해졌고 핸드폰을 켜서 '페닌슐라 호텔'을 검색하고 말았다. 역시 나는 애써 관심 없는 척하며 외면했던 건지 찾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나 가서 사진을 찍고 오고, 애프터눈티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선다는 홍콩의 비싼 호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호텔들의 사진들과 함께, 홍콩스럽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홍콩의 이미지들도 주르륵 나타났다.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이내 우울해졌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비록 내가 아이 둘의 엄마지만 아이들을 봐주겠다는 남편과 엄마도 있고, 동생이 페닌슐라 숙박권이 있어서 같이 가자고 하는데도 나는 갈 수가 없다. 상황이 되는데도 할 수가 없는 것. 앞으로도 언제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것. 내가 노력한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 것. 정확히는 할 수 있는 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못하는 것이라 화가 나는 것이다.


"비행기는 탈 수 없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던 말이었다. 아주 단호하고 간결한 한 문장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가족 여행을 계획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병원에 전화해 여행을 가도 되는지 물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대답은 '가셔도 됩니다'도 아니었고 '이번 여행은 안 가시는 게 좋겠어요.'나 '조금 더 지켜봅시다.' 같은 미래를 기다리면 희망이 있는 류의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비행기를 탈 수 없다.

처음에 들었을 땐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이 병을 처음 확진받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나름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며 공부도 하고 일도 했던 사람인데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니. 이 병을 가지고 살면서 이런저런 이슈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타격이 컸던 날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은 별 것도 아닌 일이다. 비행기 못 타고 해외여행 못 가는 일쯤은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지.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하고 싶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를 당신들은 모르지만 불쌍한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를 동정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땐 어느 나라였던가, 숙박권 당첨이 됐는데도 안 간 적도 있었다. 비행기가 싫어서 일부러 해외를 안 나가는 사람도 생각보다 꽤 많다. 만약에 내 몸이 괜찮았는데 다른 상황이 안 맞아서 홍콩여행을 포기했다면 그래도 나는 이렇게 우울했을까?


몇 달 전, 동생이 페닌슐라 숙박권이 생겼다며 건강관리를 잘해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상황을 좀 보자고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못 갈 거라고 생각하고 접었기에 홍콩여행에 관한 검색조차 해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느끼는 낯선 공기가 나를 얼마나 설레게 만드는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분위기의 그곳에 얼마나 가고 싶어 질지 이미 알았으니까. 내가 스스로 느끼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기에, 가족들은 내 몸이 좋아져 언젠가 다시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에 모른 척 이제 괜찮은지 아닌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탄다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3가지 가정해보고 나니, 내 옆에서 놀고 있는 나의 아이 둘이 아직 너무 어리고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실험에 선뜻 뛰어들 수가 없었다. 물론 아무 일도 안 생길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아 이제 원인도 치료방법도 없던 나의 문제가 해결돼서 이제 하늘에서 죽을 걱정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계기가 되겠구나 하며 얼씨구나 좋다 하겠지만, 반대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검색조차 하지 않고 지내다가 동생에게 나는 못 갈 것 같으니 그냥 엄마랑 다녀오라고 했던 건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페닌슐라 호텔을 검색하고 말았던 것일까.

다행히 나는 곧 애들 저녁을 준비해야 했기에, 우울 속에서 마음껏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있는 표출이라고는 때마침 전화 온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고, 그날 카톡을 띄엄띄엄 이어가고 있던 친구에게 장난처럼 몇 마디 남기는 것뿐이었다. 말 뿐이라고 해도 남편은 다 나아서 홍콩을 가게 되면 꼭 페닌슐라에서 묵자고 말해주었고, 친구는 건강이 먼저니 가지 말자고 말하며 홍콩은 보내줄 수 없지만, 대신 기분 전환 하라며 네일숍을 예약해 주었다. 다음 날 나의 속상함을 들은 엄마는 내가 못 가겠다고 말했을 때 동생이 자기가 좋은 숙박권을 또 벌어오겠다고 했다고 전해주셨다.

아마 내가 건강해지고 남편과 홍콩을 가게 되고 내가 돈이 아주 많아서 1박에 100만 원이 넘는 숙박비가 껌같이 느껴져도, 나는 내 돈 주고 100만 원이 넘는 호텔을 예약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자 그렇게 꼭 가야 하는 곳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친구 덕분에 나는 반짝반짝 잘 다듬어진 손톱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또 벌어오겠다 말하며 내가 비행기를 못 타는 것을 나만큼 아쉬워하고 나보다 더 미안해하는 가족들이 있다.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게 아닌, 정말 할 수 없는 것이어도 결국 그런 것이다.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것은.

행여 다음에 가게 된다고 해도 안 가도 그만인 정도인 페닌슐라 호텔.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고마운 친구 덕에 손톱 관리만으로도 전환될 수 있는 정도의 우울함. 가족들이 나를 빼놓고 간다 한들 내 몫까지 잘 놀고 오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되는 부러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 나는 이미 비행기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겪어 보았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고 때로는 너무 잔인하지만, 애써 별 거 아니라고 마음을 다독여가며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못'하는 것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 나에게는 그 원인이 건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유로 다른 부분에서 존재하는 불가능이 있을 테고 그 불가능은 남에겐 작게 보이고 나한테만 크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하는 부분일 수 있을 테니 나의 아쉬움은 짧게 끝내고 '안'하고 있는 것을 해야지. 안 그래도 '못'하는 게 많아서 억울하다 느끼는 내 인생이 더 억울해지지 않도록, 남아있는 나의 삶에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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