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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이 Mar 22. 2023

개인파산 진행 중인 채무자와 파산관재인의 대화

파산관재인은 채무자와 면담을 정리하면서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면담결과를 입력하고 있었다. 결과입력에 약간의 시간이 흘러갔는데, 앞에 앉은 채무자가 말을 시작했다.      


채무자 : “제가 죽으면 해결이 되는거 아닌가요?”     


파산관재인 : “해결이 안됩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채무자 : “왜 안된다는 거죠?”     


파산관재인 : “남편과 부모님께 상속됩니다.” 채무자는 자녀가 없는 상태였다.      


채무자 : “남편도 아프고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채무자의 강렬한 눈빛이 느껴지고 있었다.      


파산관재인 : “만약 남편분이 안 계신다고 해도 아닙니다. 부친의 형제자매한테 넘어갑니다.”     



짧은 대화가 오간 후 파산관재인은 처음으로 채무자의 얼굴을 보았다. 몸은 퉁퉁 부어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팔목은 가느다란 모습이었다. 채무자는 통증으로 스테로이드제를 많이 복용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덩치가 큰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파산관재인을 바라보는 눈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렇게 서로 먼곳을 보고 있었다.      


채무자 : “매일 죽는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죽으면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아픈것도 약을 안먹고 있어요. 빨리 끝내버리고 싶어요.”     


파산관재인 : “앞서 말씀드렸지만 죽는다고 해결되는 거 없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얼마나 힘들게 시작했는데 그걸 다시 정리하려면 그 과정이 쉬울까요? 지금 여기 파산관재인의 채무자에 대한 조사과정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게 해결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채무자 : “이제 더는 해볼 수가 없어요. 남편한테도 미안하고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안되는건지.”     


파산관재인 : “살다보면 그럴때가 있어요.”     


채무자 : “할 수 있는게 없잖아요. 무엇을 하라는 거죠?”     


파산관재인 : “이를테면, 채무자분은 지금 개인파산을 신청해서 조사를 받고 계시는거잖아요? 지금 또는 앞으로 제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셔야 하는거죠? 채무자분에게 유리한 말씀을 적극적으로 하셔야 하는거죠. 파산관재인은 채권자의 시각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부분을 조사할텐데 채무자의 시각과는 정반대에 설테니까요. 그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시면 불리하지 않으실까요?”     


채무자 : “뭘 어떻게 조사하실건데요?”     


파산관재인 : “이제 좀 눈빛이 살아나는군요. 좋아요. 삶의 희망에 대한 눈빛이. 그런데 하나만. 대응을 살살해주세요. 저도 사람이에요.” 파산관재인은 채무자가 추가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적고 그 내용을 채무자에게 주면서 다음주까지 제출을 하라고 했다.      


채무자 : “남편은 불쌍해요. 살려야 해요.”     


파산관재인 : “그래요.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채무자에 대한 조사과정이 시작되었다.      




개인파산 사건에서 파산선고 결정이 있은 다음 파산관재인이 선임된다. 파산관재인은 개인파산 사건의 부채, 재산, 면책불허가사유의 유무 등을 조사해서 법원에 제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파산관재인이 채무자에 대한 면담을 시행하는데 대화의 과정에서 삶의 여러 모습을 만나게 된다. 생계, 투자나 사업이 어렵게 마무리되는 경우라고 할수도 있겠다. 시작하는 측면이 아닌 마무리되는 측면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삶을 거꾸로 추적을 한다. 그러다보면 나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 때 바로 옆에 서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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