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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Jun 06. 2019

부러움, 인도에서 만난 미얀마
도망자

파란만장 감정지도

인도 캘커타를 여행할 때,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투숙하게 되었다. 다인실에서 여러 외국인들과 같이 한방을 쓰게 되었다. 내 옆 침대에서 누워있던 동양인 친구 한 명이 인사했다. 


Hey. where you com from?

Hi. from south korea. you?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친구는 미얀마(버마)에서 왔다고 했다. 당시 90년대 미얀마는 군부독재정권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미얀마의 상징 아웅산 수지는 주택 감금된 시절이었다. 배낭여행족들은 서로 자신들이 다녀온 곳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일상적인 대화였다. 이런저런 여행정보를 나누다가 미얀마 청년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부럽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당신처럼 우리 미얀마 젊은이들도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너의 자유가 부럽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었다.


“무슨 소리야? 나도 지옥에서 탈출한 기분이야.”

“나도 사는 게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Not happy! you know. Not happy!”


“미얀마는 하고 싶은 자유가 없어. 너는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잖아. 나 도망자다.”

“아~!!!”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다. 몸만 큰 어린아이 같은 나와 달리,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클래스가 달랐다. 사람마다 태어난 곳의 환경과 상황이 모두 달라서 비교를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나보다 다른 측면에서 자유에 관해 말해주었다. 미얀마 친구는 독재에 맞서는 운동권 젊은이였다. 군부에 쫓겨 조국을 탈출해 인도로 도망 나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잡히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이는 저 여유 있는 해맑음은 뭐지?'


그 친구의 인생 스토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야? 같은 20대인데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는 불평이나 하고 있잖아. 솔직히 오지게 쪽팔렸다. 다른 환경이라 해도 나는 단 한 번도 국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고작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불만과 증오만 있었다. 헬조선이란 단어만 없었을 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태어난 곳이 한국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의미 없었다. 


'그런데 뭐지! 이 엄청난 생각의 차이는? 부러우면서 내가 나한테 기분 나쁘다.'


따지고 보면 나도 도망자다. 낙오자란 딱지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지옥 같은 한국을 탈출해서 난생처음 자유로움을 맛보고 있으니까. 같은 도망자인데 차이가 있었다. 비교의식이었다. 경쟁사회에서 승패를 가르는 시스템이 나도 모르게 습관화되어 있었다. 


미얀마 청년과 나를 비교하고 부러움은 나 자신을 아랫급으로 생각했다. 보통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이 가졌을 때 오는 감정이 부러움이었다. 생각보다 부러움은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내 무지함이 정확히 드러냈다.


부러움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반성하게 만들면 말이다. 그러나 부러움은 종종 질투로 연결되었다. 특히 돈이 많은 젊은 부자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질투를 동반한 불만족은 외톨이가 되도록 했다. 불평불만은 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부러움은 그 간이역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지난날들의 내 행동이 자유로부터 도망 다니기였다니! 부러우면 지는 게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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