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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Mar 10. 2019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꼴찌의 갈등극복 연대기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창 열애 중 연인과 길을 걷다가 타로점 가게에 억지로 끌려갔다. 여자 친구는 나와의 궁합이 궁금했는지, 결혼하면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타로 선생이 나를 보며 하는 말 ‘자네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뭐지 싶었다. 난 여자 앞이라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안 그래도 내키지 않은 점집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점을 잘 믿는 여자 친구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렇다. 난 잘난 척과 허세로 여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했다. 고급 호텔에서 커피 마시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렇게 많이 없는 데 있는 척하고 다녔다. 아시다시피 시간이 지나면 밑천이 드러난다. 돈으로 환심을 사려했으니 돈 때문에 떠나갔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하니,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해야 올바른 분별을 하는지 못했다. 특히 6년간 이성 접촉이 차단된 생활을 했으니, 연애의 기술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여자들이 떠나가며 하는 말 '오빠는 너무 가난해'. 요즘 말로 난 호구였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들도 같이 돈을 분담했었다. 오히려 나와 평생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발목은 잡은 것은 나였다. 학창 시절 무의식 깊이 자리 잡은 열등감이 잘난 척하는 습관으로 발전한 줄 모르고 있었다. 비루하고 남루한 내 경력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여자들에게 잘난 척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들에게 꾸준히 거짓말을 한 셈이 되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가난한 상태였다. 


얼마 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지금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듣는다는 것은 이상했다. 이 시기에 잘난 척은 정점을 찍고 있을 때였다. 무협지에서 막 들어온 막내가 만랩 찍은 초고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이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이때 마법처럼 운명이 알려주는 메시지를 알아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정신을 차려보니 내 곁을 다 떠나가고 없었다. 일반적으로 잘난 척하는 인간은 왕재수로 낙인찍힌다. 잘난 척의 대가는 고립이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말이 현실이 된다더니.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툭 한마디 하고 간다. 이 말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진실이었고, 진짜 나의 모습이었다. 이제 꼴찌에서 등수도 사라진 무존재라니. 한껏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더니 혹독한 벌을 받아야 했다. 


마음속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오만하고 무례한 행동을 얼마나 했을까! 옛날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 일반적으로 듣기 힘든 말이다. 나는 두 번이나 들었다. 지금은 이 말이 가장 은혜로운 말이 되었다. 위험한 인생길을 달리는 중, 브레이크를 걸어주었으니. 지금도 옛날 버릇이 종종 나오면,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응~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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