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여전하구나

by 루미

2월에 14만원에 득템한 씨엠립 항공권. 9월이면 뭔가 달라지고 아마도 항공권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반년쯤 지났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어느새 씨엠립 공항에 와 있었다.


동남아의 공기에는 향신료가 대체 몇 프로나 함유되어 있는걸까? 처음 마시는 공기 속에는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그' 냄새가 느껴졌다. 말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다시 맡으면 늘 '아, 이 냄새지' 하는 바로 그 냄새. 냄새는 늘 그립고 즐거운 감정과 뒤섞여서 온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본다.


씨엠립에는 20년쯤 전에 한번 왔었다. 내 첫 여행이 방콕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예정에도 없는 씨엠립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당시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나와 언니는 방콕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까지 도착하는것까지만 계획을 세워놓았다. 처음하는 출국하기, 비행기에서 음료수 얻어먹기, 입국 카드 작성하기, 숙소 찾아가기를 어렵사리 끝내고 겨우 누운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침대에 누워 바라본 팬이 얼마나 불안불안하게 털털거리며 돌아갔는지도.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던가, 전날 왠 문신한 외국인들이 득실대 당장이라도 집에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던 방콕의 카오산로드는 이제는 옆집같다. 심지어 카오산 로드에서 우연히 친구와 마주친 적도 있다.


그당시 방콕에서 씨엠립까지의 거의 18시간 이상 걸린 로드트립은 그 이후의 무수히 많은 여행 가운데서도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혹은 흥미진진했던) 여행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도로는 군데군데 움푹 패여있어서 직선으로 달릴 수가 없었으며, 강을 건너는 다리는 바퀴 두개를 정확히 제자리에 올려놓아야만 건널 수 있었다.(나무 작대기 두개가 강 위에 걸쳐져 있었다...)분명 제대로 표(?)를 끊었는데도 좌석은 고사하고 트럭의 짐칸도 모자라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야 했다. 지금은 절대로 타지 않을것 같은 차를 잘만 탔구나 싶다.


태국은 이미 에어컨 빵빵한 대형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시간마다 꼬박꼬박 휴게소에 들르는 그런 시절이었다. 포이펫 국경을 앞두고 수많은 물건을 쌓아놓은 풍요로운 방콕쪽 시장에 내렸는데 국경을 건너자마자 칙칙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있는 작고 낡은 트럭을 타자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비포장 도로 곳곳의 웅덩이와 간간히 길을 막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과의 사투 덕분에 씨엠립에 도착하는 것은 영원의 시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러니, 예약한 호텔에서 나온 차량이 2인용 뚝뚝이라는 것에 내가 놀랄리가? 20년이나 지났지만, 공항은 삐까번쩍 하지만, 뚝뚝을 보자마자 알았다. 예전에 나의 운전기사들이 여전히 뚝뚝을 몰고 있으리라는 것을... 앙코르왓도 그대로고 타프롬도 그대로(일것) 인데다가, 심지어 포장안된 도로도 그대로였다. 반갑지만 좀 .... 그랬다.


뚝뚝 아저씨(아니, 이젠 청년)가 서툰 영어로 물어본다.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지난번 처럼 아무 계획이 없다. 첫 여행에서 정말 예상치 못하게 즐거웠던 기억 덕분인지 나쁜 버릇이 든 것 같다. 일단 수영장과 시원한 앙코르비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잔뜩 기대했던 앙코르비어는 놀랍게도 맛이 없었다. 내가 마신 동남아 맥주중에 역대급으로 맛이 없었다. 이럴리가 없는데? 18시간 트럭을 타고 도착해 마셨던 그 맛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당연한 소리다. 맛도 감정과 함께 기억에 새겨지는것을 깜빡했구나. 러니까 내일 저녁에 맘에 드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마셔보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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