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무에타이를 배워봤다.
10회로 예정했던 무에타이 수업이 드디어 끝이 났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적당히 북적북적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인사를 나누며, 코치에게 슬쩍, 오늘 수업이 마지막이라고 귀띔 했다. 내일 집에 갈 거라고 했더니, 다음 달에 다시 오라고 한다. 빈말 따위는 도무지 할 줄을 모르는 나는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늘 버벅거리곤 했다. 이제는 대답하기보다 역으로 공격(?)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냥 네가 한국에 오라고 했더니 한국은 너무 춥단다. 한국에 대해 진짜 하나도 모르는 순진한 녀석이다.
이제 막 20살이 갓 넘은 듯한 코치는, 장난기가 아주 얼굴에 그득그득하다. 내 물주먹이 만만해 보였는지, 자꾸 자기 배를 힘껏 때려보란다. 이 자식이 사람 자존심을 건드리네. 하지만 내 물주먹으로 아무리 힘껏 쳐 본들 그저 싱글벙글일 뿐이고… 마지막 수업마저도 나는 그렇게 굴욕을 당하며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내가 마지막 수업이라고 해서 딱히 별다른 것은 없다. 우리 수업이 끝나고 바로 다음 수업시간이므로, 코치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휴식도 취하고, 수강생들도 반기고 하느라 분주하다. 대화가 서툰 나는 그저 재빨리 인사를 하고 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아마도 마지막일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곧 비가 내릴 듯 잔뜩 구름이 낀 날이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동남아의 향기가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도 불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우기의 동남아, 바로 그곳에 내가 있었다. 내달리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고작 하루에 한 시간 반의 수업을 10번 반복했을 뿐인데, 고새 코치들과 정이 든 모양이다. 그간 내 부족한 영어실력과 귀차니즘으로 인해 대화도 별로 나눠보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조금씩 내리는 수영장에서 기분 좋게 수영을 했다. 수영을 마치고 숙소 맞은편에서 채소가 듬뿍 든 수프를 먹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곳을 이제 내일이면 떠난다. 이런 시간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 아쉽다. 늘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좋았던 곳을 몇 번이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알 것 같다. 벌써부터 여기가 그리워지려고 하니까.
고작 무에타이를 10일 배웠다고 해서, 내 주먹이 갑자기 쇠주먹이 되었다던가, 돌려차기의 귀재가 되었다던가 할 리는 없다. 내내 아둥바둥 하면서 열심히는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초보중의 왕 초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치앙마이에 체류하는 내내, 무에타이 수업이 나와 함께 해 주어서 매일 조금 힘들었고, 아주 많이 보람차고 즐거웠으며, 따뜻했다. 다음에 여유가 된다면 정말로 한 두 달쯤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물론 다시는 절대로 여름에 무에타이를 배우지 않겠다. 절대로!)
돌아가면 늙은 고양이도 오래 쓰다듬어 주고 친구와 영화도 본 뒤, 이곳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심히 글쓰기에 매진할 작정이다.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고 아쉬움은 또 다른 기대와 반가움으로 교차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 모두 행복하길! 나는 이제 집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