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미 Nov 18. 2024

함께하는 여행

방콕끄라비여행

방황을 한답시고 혼자서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녔다. 그래서인지 종종 자기도 데려달라는 친구들이 있다. 결국 몇번은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녔고, 아예 모르는 사람을 여행지에서 만나 같이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혼자 다니는 여행을 좋아한다. 즉흥적으로 결정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누군가와 동행할 경우 그게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여행친구와는 벌써 여섯번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처음은 같이 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내가 친구를 데리고 간 것이었다. 항공, 숙박, 식사비용을 모두 내가 부담할테니 너는 몸만 와.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이 당시 막다른 골목에 갇혀있던 친구에게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원하던 결실도 얻은 셈이었다. 당시 베트남 여행가이드북 취재차 떠난 여행이었고 어차피 돈도 다 내가 내기도 했고, 친구는 일본을 제외한 곳은 처음이어서 모든 결정은 내가 내렸다. 물론 짬짬이 물어보긴 했지만... 나중에 친구가, 어차피 물어봐도 마음대로 할 거 왜 물어보냐고 했으니까 형식적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야 그런 건 아니었다만. 아무튼 그래서였는지, 처음으로 누군가와의 여행도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누군가의 옆에서 자는 것이 내내 신경쓰이고, 계획이 틀어지면 괜히 더 짜증이 나긴 했어도. 


생각해 보면 누군가와의 여행에서 결정적으로 틀어지는 이유는, 같이 여행지를 결정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중대한 문제에서 부터, 그날의 식사 메뉴를 정하고 차지할 침대를 정하는 작은 문제까지 모두 함께 결정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쪽이 전적으로 결정을 하게 되면 다른 한쪽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어렵게 온 여행에서 선택권을 박탈당한 것 같은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전적으로 결정을 하게 되는 쪽에서도 모든 여행계획을 하고, 만족, 또는 불만족스러운 결과의 책임을 한쪽만 과하게 지게 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처음 몇번의 취재여행에서야 당연히 내 일이 우선이었으니 책임을 과하게 지는 것도, 불만이 쌓일 일도 없었다.   그래서 취재여행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함께하는 여행'을 하게 되자 이제 다시 불편함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친구는 바쁘고, 잘 하지도 못하고, 내가 훨씬 잘하고, 내가 훨씬 나이도 많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모든 결정을 내가 해야 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할 수도 없어서 친구의 의견을 물어보는데, 친구는 그런 것도 알아볼 시간 조차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조금 성격이....아니, 확실히 내 성격이 많이, 급했던 건, 사실이지. 


결국 그래서, 몇번의 불편함과 짜증이 쌓이고 나서야,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적당히 여행지와 일정이 정해지면(여기까지는 조율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친구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단 선택을 한다. 항공권과 배편 등을 알아보고 예매 직전에 문자를 보내 확인을 한다. 동선을 적당히 짠 뒤, 취소가 가능한 숙소들을 내 마음에 드는 곳으로 미리 예약을 해 놓고나서 친구에게 이렇게 정했으니 네 의견이 다르면 얘기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친구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내 결정을 지지한다. 그러면 이전엔 도대체 무슨 고민을 그렇게까지 하고, 혼자서 무슨 마음고생을 한 건가 싶다. 이렇게나 간단한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친구는 계획 짜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 P 였으며...세월의 풍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계획형 인간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내가 계획하는게 낫다는 게 결론이다. 동남아와 여행과 태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내 의견을 친구가 반대할 리가 없다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렇게 되고 생각해 보니, 그간 한두번 여행을 함께 했다가 다시는 같이 여행을 가지 않게 된 다른 친구들과도 뭔가 조금 더 맞춰갈 생각을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회피형 인간인지라 조금만 마음이 맞지 않아도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오른다...


아니, 그냥 이 친구가 워낙 끈기있는 성격이라, 그간 묵묵히 나를 참아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내가 필요로 하든, 필요로 하지 않든 간에 긴 터널을 지나오던 모든 순간에 옆에 있어 친구니까. 그렇게 쌓인 시간과 친구의 인내심 덕분에 이렇게 누군가와의 여행이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의 많은 것에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오늘도 깨닫는다.


여하튼, 이제 6주 뒤면 태국으로 간다. 마카오1박, 방콕 7박, 끄라비5박. 국제선과 국내선, 그리고 숙소는 모두 예약해 두었다. 나머지는 대략적으로만 정해놓고 가서 생각할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막, 신이 난다. 혼자서였다면 이렇게 신이 났을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나도 이제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하고 다녔어도,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다. 많이 기대하고, 내내 웃고 떠들다가 올 생각이다.


신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