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비밀
이모와 엄마는 차로 2시간 남짓 되는 거리에 떨어져 사는데 만나면 가끔 함께 로또를 산다. 지난번에는 이모 댁 근처에 로또 명당이 있는데 행운을 빌며 이모가 본인 것과 엄마 것을 같이 사서 나눠 가졌다. 명당이라지만 나에게 그런 행운이 오겠냐며 약간은 재미로 샀던 건데 엄마는 자기 몫의 로또 번호를 당첨번호와 비교해 보다가 3등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첨금 150만 원. 엄마는 기쁜 소식을 나에게 알리며 이모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엄마가 당장 임플란트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며, 하지만 이모가 알게 되면 당첨금의 일부라도 나눠줄 것을 기대할 수도 있는데 그럴만한 여유는 없다고. 나는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며 작은 행복을 축하했다.
그러고 나서 세 달이 지났고 나는 엄마의 당첨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엄마가 쓰던 기초화장품이 거의 바닥을 보일 시기가 되어 화장품 세트를 택배로 보냈다. 좋아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항상 우리 가족과 엄마를 챙기는 이모 생각이 났다. “이모에게도 같은 거 보낼까?” 엄마에게 물었더니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기뻐하셨다.
이모 집에 택배가 도착할 날짜가 다가오자, 엄마는 나에게 “이모가 택배 받고 고맙다고 너한테 전화하면 로또 당첨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대체 내가 선물을 보내는 것과 로또가 어떻게 연결된 건지 의아했다. 그런 얘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당첨 사실도 진작에 잊어버렸는데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모가 사준 로또 용지가 3등에 당첨됐다는 말을 내가 혹여라도 할까 봐 엄마는 전전긍긍했다. “솔직한 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야. 너는 정직이 최고인 줄 아는데 때론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니까. 그 말하면 영영 엄마하고도 원수 된다.” 정말 이 말 한마디에 엄마와 원수가 될 뻔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걸까, 아님 나이 든 엄마의 과한 걱정이라고 넘겨버려야 하나.
“그냥 당첨 됐다고 얘기하고 함께 기뻐하면 좋지 않아?”라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형편이 안된다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소액의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사실도 말하지 못하는 엄마. 엄마의 가난은 그런 것이다. 함께 축하해 줄 수 있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 이 돈을 내가 다 가져야 하기에 누가 달라고 하거나 서운해할까 봐 혼자 간직해야 하는 일.
내가 도대체 이모에게 화장품 선물을 하면서 로또 당첨 얘기는 왜 하겠냐, 엄마 눈에는 내가 그렇게 뜬금없고 멍청해 보이는 거냐고 화를 내다가 이건 엄마가 나를 어찌 생각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가난이 만든 족쇄 같은 거구나 싶어 슬퍼졌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감추게 만드는 가난, 엄마에겐 감옥 같은 그런 가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