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이 궁금할 때
어느 깊은 가을 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즈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 中
꿈에 Y가 나왔다. 무섭지도 슬프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가 나왔다.
최근 들어 Y 생각을 부쩍 많이 했다. 헤어진 뒤에도 나는 별 수 없이 그를 떠올릴 때가 많았다. 그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사업이나 처음 해보는 사업상의 고충 같은 것들... 그가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사업을 하고 있는지 봤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 견뎌내던 그의 생각이 자꾸 났다. 힘들 때면 그도 이런 느낌으로 힘들었으려나 싶어서 나 힘들다 너도 힘드냐 끈질기게 연락하면 세 번에 한 번은 답장도 왔고 그는 정말이지 정말, 정말 너무 힘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귀찮거나 싫어서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사업도 잘 안 되고 어렵다고 그랬다.
몰래 훔쳐보던 그의 페이스북이 최근 없어졌다. 카톡 프로필 사진도 없어졌고, 프로필 문구로 미루어 짐작건대 힘든 일이 있는 거 같아 보였다. 새삼 힘든 일이 웬말인가, 안 풀리는 사업을 일 년 넘게 끌어안고 있는 내내 그에게는 힘들지 않은 때가 없었다. 어쨌든 그런 궁금증 때문이었을까, 나는 더 끈질기게 자주 그를 검색했다.
최고로 찌질한 이별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분명치 않다. 롱디 연애란 본래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너무 바빴다. 나는 창업을 준비 중이었고 그는 주말도 휴일도 퇴근도 없는, 극성수기를 맞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카톡으로 연락은 계속 했지만, 한 달 동안 전화 통화 한 번을 하지 못했다. 섭섭함이 쌓인 와중에 사소한 말다툼이 커졌다. 폭발한 내 쪽에서 카톡 연애는 지겹다고 화를 내며 카톡을 차단해버렸고(반성하고 있다, 일방적이었다) 아마 그 때 헤어졌던 게 맞을 거다.
이별을 간주하고 잠깐 리바운드도 했었지만, 결국 나는 Y에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해댔고, 차단당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답장도 선선히 오곤 해서 한참을 더 집착하다가, 그러고보니 한국 들어올 일 있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결국 현지 일이 안 풀려서 못 들어오게 돼서 또 한참을 난리 치다가, 부재중전화를 수도 없이 남기고 사무실로도 전화했다가 막상 목소리 듣고는 얼어서 끊어버리는 등, 암튼 그렇게 찌질의 극치를 달리고 몇달을 더 연락하다가 결국은 상대의 입장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포기의 순간에 이르렀다. 이런 걸 세간에서는 '잠수이별'이라고 부른다지.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개업식 때 그가 보내온 특대 사이즈의 화분처럼 그가 문득 사무실로 찾아오지 않을까 허황된 상상을 했었다. 결국 그 화분을 버리고 사무실은 이사를 했고 나 또한 서울을 떠나게 되어버렸다. 이제 그가 사무실로 찾아오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사무실 구하러 다닐 때, 사진이랑 동영상 찍어서 그에게 보여주기도 했던 곳인데.
미련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궁금하다. 마음이 남았다기보다는, 자꾸만 생각이 난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연민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많은 풍파를 겪었고, 항상 너무 열심히 살았던 그 사람의 인생을 알아서. 힘들고 지쳐도 늘 꿋꿋하던 그를 나는 자주 안아주고 싶었다. 세상 무서운 거 모르고 사람 잘 믿는 주제에 사업을 하겠다고 덤비는 내게 '사람 믿지 말라'며 걱정해주던 그에게, '난 사람 안 믿어, 나도 믿지 마'라고 말하는 그에게, 좀 믿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믿어도 된다고.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고.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끝끝내 연락을 해댔던 건 그 때의 다짐 때문일까. 친구들은 엄마짓 하지 말고 여친 노릇 하라고 충고했지만, 연민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전처럼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왠지, 여전히, 그를 버리지는 못하겠다. (친구의 한숨과 구박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그가 궁금하다.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