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의 소식을 들었을 때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일을 동경하는가. 그건 실로 위험한 일이다. 연애의 끝에 이별이 올 때, 우리는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며 잊어나간다. 하지만 도시가 통째로 물에 빠져 가라앉지 않는 이상, 그 강렬한 시간과 공간을 잊을 방법이란 도무지 없다. 일상에 집중하다가도 그 도시의 이름을 듣게 되면 저기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이다. 동네나 학교에서 만난 사람처럼 그와의 추억 위에 새로운 것들을 덧대고 색칠하기도 쉽지가 않다. 여행의 순간들은 기억 속에서 있는 그대로 정지된 채 오래도록 생생하다.
두 번은 갈 일이 없는 먼 나라의 일이라면 오히려 괜찮다. 한 번 다녀오고 나서도 이래저래 또 갈 일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 다녀온 이야기를 듣게 되는 가까운 여행지라면... 괴로워진다. 망할놈의 베트남에 가긴 가야 하는데, 출장 준비를 하는 내내 신경질이 났다. 그 사람이 사는 도시에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 나라에 가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베트남은 온통 그 사람이었으니까.
현지에 도착해서, 일 때문에라도 그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사무적으로 대하기로,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웬걸, 그는 없었다. 벌써 몇 달 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페이스북이 없어진 시기와 얼추 일치해, 머릿속에서 퍼즐이 착착 맞춰졌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그가 무척 자존심 상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전화번호를 바꾼 것 같았다. 사흘 간의 출장 기간 동안 틈틈이 열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할 수 없었다. 카카오톡이라도 보내볼까 백 번을 고민했고 백 번 참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 나라에 있는 며칠 동안 배경음악처럼 그가 떠올랐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로컬 식당에서 반쎄오와 분짜 따위를 주문하고 전동차를 타고 시내를 투어하는 동안에도 베트남어를 발음하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돌아온 뒤에도, 출장 사진을 정리하며 별 수 없이 그를 떠올리다 짜증이 나서 글을 쓴다. 나는 머지않아 또 베트남에 가야 하고 공교롭게도 그곳은 너무나 뜨고 있는 여행지라 여기저기서 베트남 다녀온 얘기들이다.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거나 내가 그에 대한 감정을 완전연소시켜버릴 수 없다면 이렇게 주절주절 적기라도 해야 마음이 덜어질 것 같다. 덜어져서 털어질 것 같다.
그러니 여행자여, 낯선 도시에서 함부로 사랑에 빠지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