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 유명해서 별다른 설명조차 필요 없는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딥티크(Diptyque)입니다. 소위 향수 좀 안다는 사람 중에 딥티크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딥티크는 원래 향수로 시작한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향수 브랜드로서 첫 발을 내딛기까지 무려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죠.
딥티크를 만든 세 친구들 이야기
딥티크는 세 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브 쿠에랑(Yves Coueslant), 크리스티앙 고트로(Christiane Gautrot) 그리고 데스몬드 녹스-리트(Desmond Knox-Leet)죠. 1961년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파리의 작은 패브릭 부티크가 바로 딥티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브 쿠에랑은 1926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을 베트남에서 보냈는데, 그의 아버지가 인도차이나 은행의 법률 부문을 이끌던 변호사였기 때문이었죠. 그의 아버지는 쿠에랑 역시 당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쿠에랑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딥티크 창업 전까지 근 12년간을 예술 분야에 종사했죠. 물론 그는 중간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비즈니스 스쿨 입학 시험을 치기도 했고 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 디자이너 폴 프레체(Paul Fréchet)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의 조수로 일하며 인테리어 디자인과 무대장식의 세계로 뛰어들었죠.
그는 끼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대 장식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무대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했거든요. 극장 투어 가이드, PR, 프롬프터, 심지어 연기까지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비즈니스 감각과 담력이 있었던 게, 그가 투어 가이드로 일하던 때 의상이 절도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마피아와의 성공적인 협상 끝에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도 했거든요. 본인 아버지로부터 창업 비용까지 빌리면서 나머지 두 친구에게 창업을 제안했던 사람도 쿠에랑이었으니, 어쩌면 그는 아버지가 원하던 비즈니스 분야로 결국 스스로 발을 들이게 된 셈입니다. 물론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예술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말이죠.
한편 파리에서 태어났던 크리스티앙 고트로는 어렸을 때부터 모자, 인형, 옷, 태피스트리 등을 직접 만들었을 정도로 손재주가 있었다고 해요. 고트로는 파리 국립 장식 미술학교(Ecole des Arts Décoratifs) 출신인데요. 엉싸드(ENSAD), 파리 아르데코라 불리기도 하는 이 학교는 세계적인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배출한 프랑스 최고의 국립 예술대학교로 유명하죠. 딥티크를 시작하던 때 그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데스몬드 눅스-리트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아일랜드(Ireland)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서 일했고,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화가로 지냈죠. 참고로 블레츨리 파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비밀 암호를 해독했던 영국 지식인들의 비밀 캠프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배경이었던 곳입니다.
1959년 크리스티앙 고트로와 데스몬드 눅스-리트는 함께 패브릭과 벽지를 디자인해서 팔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유명 패브릭 회사 샌더슨(Sanderson)과 힐스(Heal's)에 납품되고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고 있었죠. 쿠에랑은 친구의 소개로 그 둘을 만났고, 1961년 패브릭 제작·판매사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세 친구들은 파리의 생 제르맹 34번가(34 Boulevard Saint-Germain)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예술인의 공방이 많은 소박한 지역으로 트렌디하지는 않은 곳이었죠. 그 곳을 선택했던 건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장인들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들의 매장은 두 장의 그림이 한 개의 작품을 이루는 두폭화(diptych)처럼, 같은 크기의 창문이 두 쪽의 도로에 각각 나 있었습니다. 거기서 착안해 매장 이름은 딥티크(diptyque)로 지었어요. 특이하면서도 묘하게 국제적인 느낌이 나는 단어였거든요.
현재 우리가 아는 딥티크는 향수 브랜드이지만, 딥티크에서 본격적으로 향수 사업에 뛰어든 건 사업을 개시한지 무려 15년 뒤였습니다.
딥티크는 패브릭 상점으로 시작했으나 패브릭으로 인기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상류층은 실크나 벨벳 소재로 집안을 장식했기에 면을 활용한 인테리어는 너무 급진적이었거든요. 2년 여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면서 창업주 세 명은 재정적으로도 큰 압박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왔는데요. 매장 창문을 장식하기 위해 비치해 놓은 오브제들이 사람들의 눈에 띈 겁니다. 패브릭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는데, 비매품이었던 장식용 오리와 전등 같은 소품을 사겠다는 사람만 계속 몰려들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세 사람은 딥티크의 운영 방향을 바꾸게 됐습니다. 패브릭은 계속 만들되, 패브릭과 어울릴만한 제품들도 함께 팔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딥티크 매장에는 전 세계 장인들이 만든 특이한 오브제와 장식품들이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편집숍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기에, 딥티크 매장은 패션 매거진과 파리 가이드북에도 소개되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해요.
수많은 상품 중에서도 인기가 특히 좋았던 건 영국식 포푸리였는데요. 포푸리는 쟁반 위 혹은 얇은 천주머니에 담긴 말린 꽃을 뜻하죠. 공간에 자연스러운 향기를 주면서 멋스럽기까지 한 이 포푸리에 파리지앵들이 완전히 매료됐던 겁니다.
포푸리가 잘 판매되는 걸 본 양초 제작자가 향초 제작을 제안했고, 딥티크에서는 그를 통해 향초를 만들게 됐습니다. 당시 편집숍이라는 개념이 새로웠던 것처럼 양초가 아닌 '향초' 역시 찾아보기 힘든 아이템이었는데요. 여기에 더해 딥티크 향초는 화려하거나 인위적인 향이 아니라 포푸리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본기가 훌륭한 향이었기에 큰 인기를 구가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향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딥티크에서는 계속 자금난에 시달렸죠. 이브 쿠에랑은 "빚을 갚기 위해 수년간 노예처럼 일했다"라고 과거를 회상합니다. 특히 1968년에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는데요. 68혁명(파리 5월 혁명)이라는 대대적인 학생운동이 일어나며 매장에 발길이 뚝 끊겼던 겁니다. 이 때 데스몬드 녹스-리트는 향수를 만들자고 두 명의 친구를 설득했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딥티크 최초의 향수 로(L'eau)가 1968년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딥티크에서는 1973년과 1975년에 향수를 하나씩 더 선보였죠.
이 세 개 향수가 모두 성공한 후에야 딥티크에서는 향 사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패브릭과 인테리어 소품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이후 딥티크는 세계적인 조향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훌륭한 향을 만들어내며 차근차근 성장했죠.
그러다 딥티크는 창업 40년만인 2001년 명실공히 세계적인 브랜드로 급부상하게 되었는데요. 계기는 바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였습니다.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Carrie Bradshaw)가 딥티크 향초, 특히 딥티크 베이(Baies) 향초를 잘 때와 목욕할 때, 그리고 남자친구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 전후에 쓰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딥티크라는 브랜드가 순식간에 핫해진 겁니다.
패브릭에서 편집숍, 향초에서 향수까지. 변화 많은 여정이었지만 이 여정을 통틀어 딥티크가 지켜갔던 것들이 있습니다. 자유로운 삶과 진정성 있는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었죠. 자유로움과 진정성은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딥티크를 딥티크답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딥티크와 일한 경험은 다른 향수 회사와 일했을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저만의 방식대로 만들 수 있었죠." 딥티크와 가장 많은 작업을 해온 조향사 중 하나인 파브리스 펠르그랑(Fabrice Pellegrin)의 말입니다. 딥티크에서는 돈이나 야망 같은 상업적인 것들은 중요하지 않죠. 꿈과 상상력, 그리고 정말로 아름답고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진정성이 딥티크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래서 딥티크에서는 소비 패턴이나 트렌드 분석을 하지 않습니다. 조향사들을 경쟁시키지도 않고,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공을 들여요. 그렇게 만들어진 특별한 향수가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되면, 딥티크에서는 그 향수를 평생 생산합니다. 설사 대중적인 인기가 부족해서 손해가 난다고 해도 말이죠. 그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데, 상업적 제약 때문에 없애버리는 건 딥티크에서 추구하는 진정성과는 배치되니까요.
파브리스 펠레그랑은 또 '딥티크를 향수 세계의 "트렌드세터"라기보다 일종의 "혁신가"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딥티크는 자유롭고 새로운 시도로도 유명한데요. 일례로 딥티크의 최초의 향수인 로(L'eau)는 젠더리스(genderless) 향수였습니다. 남성용, 여성용 향수의 구분이 명확했던 1968년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죠.
딥티크에서는 일렉트릭 디퓨저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럭셔리 니치 향수와 전자 제품은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급진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딥티크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죠. 핸드메이드로 만든 하얀 자기 케이스 안에 딥티크 특유의 타이포그래피가 금색으로 새겨져 있어 딥티크스럽거든요. 새로움을 추구하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딥티크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제품이 아닐까 합니다.
딥티크에서는 이렇듯 자유로움과 진정성이라는 자신만의 가치를 꾸준히 지켜가며 성장해나갔습니다.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걸 겪으면서 오히려 더 딥티크다워졌죠. 마치 여행하면서 의도치 않은 여정이 거듭될 때마다 내가 누군지 더 잘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딥티크와 창업주들의 현재
딥티크는 2005년 런던의 사모 펀드 만자니타 캐피털(Manzanita Capital)에 인수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부터 전세계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국제적으로 자리잡았어요.
규모가 커졌다 하더라도 세 창업주가 만든 딥티크의 철학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딥티크의 최초 매장인 파리 생 제르망 34번가에는 여전히 딥티크의 매장이 있고요, 딥티크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매장은 고심 끝에 조심스럽게 내죠. 딥티크 홈페이지에는 딥티크의 성장 과정이 어떤 브랜드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창업주 중 데스몬드 눅스-리트는 1993년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브 쿠에랑은 인수 후에도 볼류트(Volutes) 향수를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다 2013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어요. 현재 딥티크는 2007년부터 합류한 파비엔 모니(Fabienne Mauny)가 이끌고 있습니다.
딥티크의 향은 고급스럽고 풍성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과도하게 멋을 낸 느낌이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필로시코스가 가장 유명한데, 특유의 우아하고 깔끔한 무화과 향이 나죠. 그리고 딥티크 향수뿐만 아니라 향초나 룸 스프레이도 추천합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특별한 향기가 공간에 베어 뿌리자마자 바로 기분이 좋아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