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1961년 미국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에서 검안의(optometrist·OD)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남 2녀 중 둘째였죠.
그녀의 학창 시절은 우울했습니다. 외모 때문에 말이죠. 그녀는 4살부터 안경을 썼고, 그 뒤엔 4년간 치아교정을 했어요. 게다가 13살 때부터 여드름이 심각한 수준으로 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4살 때 부모님까지 이혼했는데요. 그 여파로 그녀는 고도비만에 시달리며 16살 무렵 몸무게가 95kg에 달하게 됩니다. 칼리노는 그녀의 고등학교 고학년 시절을 일컬어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합니다.
칼리노는 다이어트 클리닉과 피부과에 수년간 다녔던 경험을 살려, 대학교가 아닌 미용 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미용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와 친구에게 6,700 달러를 빌려 페이셜 마사지와 메이크업을 판매하는 작은 부티크를 피닉스에 열었죠.
1985년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성형외과 전문의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밑에서 일하며 정식 에스테티션 라이선스도 취득했습니다. 그러다 기회를 발견했어요. 필링을 즐겨하는 얼리어답터 고객군이 있었는데, 당시의 필링 방식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피부가 회복되는 데 몇 주나 걸렸거든요.
그녀는 더 빠르고 간편하게 필링 하는 방법을 연구해 마침내 1988년 마이크로필(MicroPeel)이라는 필링 시술법을 개발해냈습니다. 필링할 때 함께 쓸 수 있는 바이오메딕(BioMedic)이라는 제품 라인도 함께 만들었고요.
면도기로 가장 바깥쪽 피부 표피를 떼어낸 뒤, 알파 하이드록시 산(alpha hydroxy acids·AHAs)과 드라이아이스를 바르는 시술이었는데, 시술 시간이 15분에 불과했죠.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피부 문제를 해결하는 시술이고 제품이었기에 효과도 좋았고요. 그녀의 샵에는 점심시간마다 매일 서른 명의 고객들이 필링을 받겠다고 줄을 서곤 했습니다.
필로소피는 빠른 시간 내에 급성장했습니다. 론칭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삭스 피프스 에비뉴’(Saks Fifth Avenue)에 입점했는데, 거기서 무려 2번째로 매출이 높은 브랜드가 되었죠. 이뿐만 아니라 ‘노드스트롬’, ‘바니스 뉴욕’ 등 고급 백화점 70여 개에 매장을 냈습니다. 제품 종류도 250여 개로 늘어났고요. 18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라고 하기엔 가히 놀라울 정도죠.
사실 필로소피가 단기간에 빠르게 유명세를 얻은 건 오프라 윈프리 쇼 덕분이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프라 윈프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죠. 일일 시청자 수가 700만 명에 달했던 그녀의 토크쇼에 칼리노가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가 필로소피 제품을 즐겨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필로소피는 순식간에 미국 사람들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제품명 아래에는 피부가 아닌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문장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제품과도 연결되면서 웃음 짓게 만들어요.
이를테면 수분크림 ‘홉 인 어 자’(hope in a jar)에는 “희망이 있는 곳에는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where there is hope there can be faith, where there is faith miracles happen)”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이게 문장 그대로도 해석이 되지만 필로소피의 수분크림을 ‘희망’에 대입시켜도 말이 되거든요.
칼리노는 이러한 제품명과 패키징이 필로소피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는 동시에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필로소피의 ‘오글거리는’ 문구들을 통한 마케팅을 대기업에서 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도 했으니까요.
독특하고 재치 있는 겉모습에, 과학을 기반해 탄탄하게 만든 속까지. 그리고 그 심플하고 귀여운 겉모습이 ‘우리의 속’을 채워주는 필로소피. 자꾸만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브랜드가 아닐까요.
필로소피와 창업주의 현재
필로소피가 소위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닙니다. 스킨케어 라인은 잘 팔렸지만 메이크업 라인에서 계속 손실이 나서, 결국 아주 일부만 놔두고 메이크업 라인을 대폭 줄이기도 했고요. 너무 적은 마케팅 예산 때문에 노출이 잘 안 돼서 홈쇼핑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리미엄 브랜드가 홈쇼핑에 나가는 건 꽤나 위험한 선택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성장해간 필로소피는 2007년 칼라일 그룹(Carlyle Group)이라는 사모펀드에 4,500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코티 그룹(Coty Group)에 1조 원 이상에 재인수되었고요.
칼리노는 현재 어여쁜 두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성격 유형을 기반으로 하는 향수 브랜드 ‘아키타입’(Archetypes)을 론칭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