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셰어하우스에서 살아본 이야기

공동 공간의 조용한 긴장, 그리고 예상 밖의 배움

by 라일락향기

처음 일본에서 셰어하우스를 선택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초기 정착 비용이 적게 들고, 가구도 갖춰져 있으며, 월세도 비교적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렴하게, 가볍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던 셰어하우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가장 많은 걸 배운 건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입주 첫날, 모두가 조용했다

내가 들어간 셰어하우스는 도쿄 외곽의 작은 2층집이었고, 총 6명이 함께 생활했다.

공용 주방과 거실, 욕실을 나누고 각자 방은 하나씩.

입주 첫날, 거실에서 마주친 다른 입주자들과의 첫 인사는 너무나 조용하고 짧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모습.

처음엔 ‘이 집에선 친해지기가 어렵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건 거리를 두기 위한 예의였다는 걸.


공동 공간의 룰, 말없이 지켜지는 경계

셰어하우스에는 ‘말로 하지 않지만 지켜야 하는 규칙’이 꽤 많았다.

조리대에 물기를 남기지 않기, 냉장고에 음식 이름 적기, 밤 10시 이후엔 헤어드라이어 사용 금지…

벽에는 작은 종이로 붙어있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더 많은 건 ‘공기’ 속에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발소리, 누군가 식사 중이면 조용히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타이밍.

함께 사는 공간인데,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엄청난 배려와 침묵이 오갔다.

처음엔 긴장감으로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나도 그 감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히려, 관계는 천천히 만들어진다

두 달쯤 지났을 때쯤, 주말 저녁에 우연히 주방에서 마주친 입주자와 처음으로 30분 넘게 대화를 나눴다.

그는 오사카 출신의 30대 회사원이었고, 평소엔 늘 조용히 다녔다.

하지만 그날, 함께 만든 인스턴트 우동 덕분에 갑자기 분위기가 풀렸고

그제야 “여기선 조금씩 친해지는 게 좋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이후, 주방에서 가끔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겼다.

의무도 아니고 강요도 아닌, 말 그대로 ‘있으면 좋은 연결’.

셰어하우스의 인간관계는 결코 빠르지 않지만, 단단했다.


불편함도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이상적인 면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가끔은 냉장고에서 내 요거트가 사라지기도 했고,

밤늦게 샤워한 누군가의 물소리에 잠을 설친 날도 있었다.

그리고 청소 당번을 자주 빠지는 사람을 두고 묘한 긴장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조차, ‘내가 원하는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말없이 흘러가는 셰어하우스의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예의 있게 갈등을 피하고

적당한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셰어하우스를 떠난 지금도,

그곳에서 배운 ‘조용한 배려’와 ‘충분한 거리감’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가까워지고 싶다면 무리해서 다가가기보다,

먼저 공기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걸 일본의 셰어하우스가 알려줬다.


‘함께 살지만 혼자 있는 듯, 혼자지만 결코 외롭지 않게.’

그게 아마 일본 셰어하우스의 진짜 매력이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해이삿짐센터 스트레스 하나 없이 마친 솔직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