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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지 않은 건 전부 위선'이라고 보는 청소년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님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 보도를 보며,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49)는 사건 가담자들의 부모를 떠올렸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고등학생 아들 생각이 났다. "그때 애랑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지금 저기에 우리 애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청소년 사이에 퍼지고 있는 위험한 생각과 그 교육 방식에 대해 SNS에 적었다. 제목은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 "그 글이 그렇게 많이 퍼지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권 교수는 말했다.



권정민 교수는 극우를 포함한 '극단화' 전반을 경계하며, 사상을 주입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자녀와 한두 번 대화를 나누거나 몇 시간짜리 강연을 듣는다고 곧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권정민 교수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평소 구축해온 자녀와의 좋은 관계'였다. 끊이지 않는 대화는 아이가 극단적 사고에 빠지는 걸 방지한다. 탄탄한 신뢰가 밑바탕에 있으면 설득하기도 쉽다.


어느 시점부터 자녀와의 대화가 줄고, 끊어진다. 사춘기를 탓한다. 그러나 권정민 교수는 부모가 '희생'하면 아이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관계를 저해할 만한 말은 자녀에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아이와의 관계를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관계가 상하지 않는 선에서만 한다"


부모와 자녀의 토론은 가능한가? 부모가 '토론'이라고 믿는 대화가 실은 자녀의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사상주입'은 아닐까? 권정민 교수는 '토론'의 효용을 의심하는 반응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회의적인 반응을 접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부모-자녀 사이에 토론을 해본 경험이 없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지닌 부모상을 투영하는 듯했다."


동등한 입장의 개인 간 토론은 냉정하고 치열하게, 철저히 논리를 밀어붙인다. 아이들과 토론할 때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논의 중인 사안에 대한 비판쉽게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정민 교수가 제안하는 토론 방식의 4단계 원칙>

(1) 일단 들어본다 :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라며 다그쳐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논박하지 않고 어떤 말인지 귀 기울여 들어본다.

(2) 관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 공감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심리적 벽을 낮춘다. 자녀가 제 생각을 유연하게 돌아보고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게 하는 작업이다.

(3) 인간화 : 통계부터 들이밀면 잘 먹히지 않는다. 받아들이기 쉬운 주변 사례를 이야기한다(ex. 엄마가 느낀 사회적 제약)

(4) '팩트'는 나중에 제시한다 :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 존중한 뒤 신중하게 지적한다.


이 토론은 무척 자유롭지만 어디까지나 그 목적은 설득이다. '극단주의에 빠지는 것까지도 네 선택'이라는 식의 완전한 자율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생각이든 흑과 백, 선과 악이 없고, 회색지대뿐이라고 보는 분도 있다. 나는 이 회색 지대를 넓게 잡고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려는 편이다. 그러나 교육학자로서 최소한의 흑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는 선.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행동"을 '흑과 백'의 경계로 본다. 청소년, 특히 남성 청소년이 골몰하는 몇몇 극우 유튜브의 논리가 이 기준에 걸린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보수와 진보 외에 제3의 극단주의를 '이준석파'라고 칭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이든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판단의 기준'대신 "당장 '나'에게 유익한가, 이득을 가져다주는가'를 앞세운다.


[극단적 상대주의의 실례]

* 장애인의 지하철 집회는

내 통근을 방해하기에 나쁘다.

* 여성 전용 주차장은 내가 쓸 수 없으니 나쁘다.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는 주장은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이준석파' 청소년은 거침없이 그 생각을 드러내는 걸 미덕으로 생각한다. '쿨'하고 멋있고 재미있다고 느낀다.


솔직함의 반대편에는 '위선'이 있다. 이들은 '내심과 다른 행동' 전반을 위선의 범위에 넣는다. 솔직하지 않은 건 전부 위선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배려, 예의도 그렇게 본다.


우리는 극단주의에 빠진 청소년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말랑말랑한 나이대'의 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래서 자유라는 이름의 방치나, 계도를 표방한 억압이 아닌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내린 결론이 '토론을 통한 구출'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은 언제나 변하고 있고,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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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길 바라기에 구출해야 한다"

극단주의에 빠진 청소년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

SNS에 올린 글로 화제가 된

권정민 교수를 만났다.

그는 토론을 통한 교육을 이야기했다.

* 이상원 기자님(prodeo@sisain.co.kr)

* 시사IN / 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