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비브로스 CEO님 / 심리학관
직장을 다니며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창업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고, 창업가는 창업가로부터만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직장인으로서 직장을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경험이 정말로 좋았다.
첫 번째 직장의 사수였던 과장님은 정말로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 하는 업무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고, 혼자서 할 수 있게 하고, 실수를 해도 화를 내지 않고 뒷수습을 해주고 다음 번에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은 지를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을 붙여놔도 그 사람에 맞게 일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런 과장님이 신기했고, 자연스레 과장님을 관찰하게 되었다. 과장님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언제나 화기애애했고, 예상치 못한 일이 닥쳐도 잘 해결되곤 했다. 25년째 직장생활을 한 것에는 과장님의 덕이 컸다고 생각한다.
2014년, 아직 직원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페이스북 코리아에 들어갔다. 지사장인 벤님은 나보다 세 살이 어렸고 매니저 역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매니저와 일해본 적은 그 때가 처음이라 좀 걱정이 되긴 했는데 막상 일해보니 너무 잘 맞았다.
벤님은 굉장히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고 하기로 한 숫자는 어떻게든 꼭 맞추려는 사람이었다. 보통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조직 분위기를 굉장히 험하게 만들곤 하는데 벤님은 목표달성과 팀 분위기를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벤님에게는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존감이 꽤 높은 사람이라 어지간한 이야기에도 상처를 받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벤님에게 ‘불필요한 1:1 좀 그만하라’고 조언을 했다. 벤님 스케쥴의 1/3이 ‘그 놈의 1:1’이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사람과 1:1을 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도 좋은 내용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찌 보면 월권이고 불쾌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벤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일정 부분 내 말을 들어주었다.
벤님과는 내기도 꽤 많이 했는데 페이스북 코리아의 매출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가장 즐겨하는 내기이기도 했다. 페이스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1년에 한 번씩 만나 한우와 위스키를 걸고 벤님과 내기를 하곤 한다.
카카오에 들어와서는 션과 메이슨 두 명의 매니저와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메이슨과는 네이버에서 1년 정도 같이 일해본 적이 있지만 션과 일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둘은 매우 다른 사람이었는데 신기할 만큼 잘 어울렸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두 사람에게 나누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션은 본질을 파악하는 감각이 탁월했고, 메이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았다. 션에게는 뭔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생각을 떠올리면 션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다.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같이 일하면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메이슨은 회의에 들어온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묻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도 없는데 도대체 왜 외우지도 못할 사람들의 이름을 묻는가 했는데, 내게는 수 많은 회의 중 하나였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CEO와의 흔치 않은 만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메이슨은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다.
션은 일의 본질을 파고 들어갔고, 메이슨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두 명의 매니저가 오랫 동안 침체에 빠졌던 카카오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가를 보는 것은 넷플릭스의 어떤 드라마보다 재미있었고, 그 여정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스타트업의 창업가는 회사의 경험이 없거나 직장생활 초기의 몇 년의 경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많은 프로세스가 이해가 되지 않고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선다. 시행착오가 많고, 권한과 위임에 대해서 갈팡질팡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를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VC는 투자를 해 주고 여러가지 조언을 해 주지만 투자와 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업을 제대로 성공시켜본 적이 없는 VC도 많고, 있다 해도 굉장히 예전 경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
100개의 회사를 투자하고 몇 개의 유니콘을 만들어냈다 해도 본인이 직접 회사를 차렸을 때 그러한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의 조언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창업가들의 조언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고, 그것은 진실이 되어간다.
직원들을 믿으면 안되고, 일은 주에 80시간씩 시키고, 연봉은 후려치고 스톡옵션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가 하면 또 너무나도 마음이 여린 경우도 많다. 방향을 분명히 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누구와 같이 하고 누구와 이별해야 할 지에 대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로 사람들을 믿고 기다리기만 한다.
회사 밖의 멘토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한계가 많다. 모든 회사의 상황은 다르고, 그 안의 구성원의 성향과 능력도 모두 다르다. 어떤 회사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성공에 이르게 하는 마법같은 레서피는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조언을 한다.
그 중에서 어떤 조언을 따라야 하는지, 같은 조언이라도 왜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실제로 그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의 조언’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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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비브로스 CEO님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