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쉬워졌다

심박을 보며 달렸을 뿐인데

by 조아

어제는 달리면서 자주 속도를 확인하지 않았다. 페이스가 몇 분인지, 이전 기록보다 빠른지 느린지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손목 위에 뜨는 작은 숫자를 자주 바라보았다.


바로 심박수였다.



145 bpm을 기준으로 조금 올라간다 싶으면 미련 없이 속도를 낮췄고, 호흡이 흐트러질 것 같으면 잠깐 리듬을 늦췄다. 그 선택들이 하나둘 쌓이자 달리기는 놀라울 만큼 편안해졌다.


몸이 먼저 앞서 나가지도 않았고, 의지가 몸을 끌고 가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상태를 살피며 허락된 속도로 달렸을 뿐이다.


생존형 인간인 나는 잘 참고 버틴다. 그래서 예전의 나는 늘 참으며 달렸다. 조금 힘들어도 참고, 심박이 올라가도 “이 정도는 버텨야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달렸다.


그때의 달리기는 훈련이기보다 시험에 가까웠다. 오늘의 나를 증명해야 했고, 기록으로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그 결과는 종종 뻔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무너졌고, 달리기가 끝나면 피로가 오래 남았다. 달리기는 계속했지만 몸은 조금씩 지쳐갔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버티지 않아도 충분히 달릴 수 있었다. 심박수를 기준으로 달리자 달리기의 기준이 바뀌었다. ‘얼마나 빠른가’가 아니라 ‘이 강도를 몸이 받아들이는가’를 스스로 묻게 되었다.


심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가 올라가면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무시하지 않는 순간 달리기는 훨씬 정직해진다.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아도 몸은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리듬을 찾아간다.


달리기를 끝났을 때 몸에 남아 있던 감각은 피로가 아니라 여유였다. 숨은 가라앉아 있었고, 다리는 아직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여유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내일의 달리기를 두렵지 않게 만든다. 달리기를 계획할 때 부담보다 기대가 먼저 떠오른다. 달리기를 오래 지속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감각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달리기가 내일의 달리기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확신.



아마 나는 당분간 이렇게 달릴 것 같다. 심박을 관리하며, 속도보다 상태를 먼저 살피며. 이 방식이 가장 빠른 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가장 오래갈 수 있는 방향이라는 점이다.


달리기는 결국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함께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심박을 보며 달린 어제의 달리기는 그 사실을 조용히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