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힐이란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다
육상의 도시, 대구. 어제 나는 영남일보 국제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다. 업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시험대 위에 올린 하루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업힐은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정면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러너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업힐 코스로 잘 알려진 대구마라톤. 영남일보 국제 하프 마라톤은 그 대구마라톤의 평지 구간을 덜어내고, 오히려 업힐 구간만 모아놓은 듯한 코스였다. 시험대라고 부르기에도 다소 과한,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대회일이 가까워질수록 참가 여부를 두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결국 대구로 향한 이유는 분명했다. 부단히런 제주팀에서 참가하는 미소님과 함께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날 대구로 출발했지만, 이상하게도 도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대구를 찾을 만큼 이 도시에 익숙하다. 그러나 지난 2월 대구마라톤 이후, 대구는 더 이상 친근한 도시가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선뜻 마음을 열기 어려운, 어딘가 서먹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미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상,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먹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4월의 화창한 봄날, 마라톤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미소님을 만나 가볍게 몸을 풀며 출발을 준비했다. 사실 대회장 2km 떨어진 곳에 주차한 뒤 걸어오며 워밍업은 이미 충분히 된 상태였다. 그래서 몸보다 마음을 준비하는 데 더 집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분명히 할 수 있다.”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기 위해 그 말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코스는 대구스타디움에서 출발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형태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높고 낮은 경사도를 가진 업힐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5.5km부터 9.5km까지 이어지는 약 4km의 오르막은 완주를 좌우할 승부처였다. 이 구간만 잘 버티면, 체력을 무리하게 쓰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한 번 겪은 좌절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업힐에서는 누구나 숨이 가빠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속도는 떨어지고, 잠시 멈추고 싶다는 유혹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럼에도 끝내 걷지 않고, 비록 페이스가 느려지더라도 계속 달리는 사람만이 정상에서 숨을 고른 뒤 다운힐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다운힐이라고 해서 무작정 속도를 올릴 수는 없다. 다시 나타날 업힐을 대비해 힘을 남겨 두어야 한다. 대구의 코스는 늘 그렇게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삼덕IC를 지나면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르막이 있었고, 수성알파시티역을 지날 무렵에는 더 강한 업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지만,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 자체가 하나의 업힐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달랐다. 대회 전 코스를 미리 분석해 두었고, 올해 대구마라톤을 경험한 덕분에 적어도 낯설지는 않았다. 역시 경험은 힘이 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며 미소님과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 우리는 조금씩 대구스타디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프 코스의 거리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업힐들을 지나 다시 대구스타디움으로 들어서는 순간, 지난 2월 대구에서 느꼈던 좌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그와 함께 업힐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옅어졌다.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소님과 함께 달렸기에, 업힐만 모아놓은 또 하나의 대구마라톤 같은 이 대회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을 얻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해왔던 훈련을 계속 이어 간다면, 2027년 대구마라톤 풀코스 역시 충분히 완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어쩌면 이번 영남일보 국제 하프 마라톤은 단순한 완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대구를 달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좌절을 남긴 도시에서 다시 출발선을 밟고, 끝내 업힐을 넘어 결승선까지 돌아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어제의 달리기는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