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지난 토요일, 나는 제33회 경주벚꽃마라톤에 참가했다. 대회를 앞두고 비 예보를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대회 당일만큼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우의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요일 밤 11시가 지나자 창밖으로 세찬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새벽부터 일어나야 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자고 일어나면 비가 그쳐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겨우 눈을 붙였다. 그러나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다시 창밖을 확인했을 때도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날 밤, 행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우의가 있는지 확인했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고작 두 개뿐이었다. 2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 입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량이었다. 몇 군데 더 돌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결국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쩌면 그때 이미 내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의를 찾고 있었다. 믿음과 행동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내 손에는 끝내 우의 두 개만 남았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대회에 참가하든 하지 않든, 어떻게든 우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후회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방법이었다.
나는 근처 편의점과 마트의 영업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다음 날 새벽, 대회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들를 수 있는 곳들을 차례로 정리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결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알람을 맞춰 둔 덕분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체크아웃한 뒤, 우의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불국사 근처는 24시간 영업하지 않는 편의점도 많아 마음이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가능성에 기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편의점 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모든 걱정을 단번에 지워 버렸다. 우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마음속 불안은 봄눈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우의 스무 개를 집어 들었다. 그날 아침, 그것보다 더 큰 수확은 없었다.
우의를 들고 집결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미 출발 준비를 하고 계신 분들께 우의를 나눠 드리자 마음속에는 안도감과 기쁨이 가득 찼다. 어쩌면 그 행복은 우의를 발견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입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우의를 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중런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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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내 내 안을 무겁게 채우고 있던 것은 ‘날씨’라는 문제였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그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차분히 생각하는 일이었다.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찾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특히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황 자체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고민하는 태도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그날 나는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비 속에서도 함께 달릴 수 있는 방법은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삶도 비슷한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른다.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중요한 것은 억지로 버티는 일이 아니라, 먼저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는 일이다. 경주의 빗속에서 나는 그것을 다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