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앞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
어제 오후부터 개화를 알리는 봄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개화에 맞춰 열린 축제의 성패마저 흔들 수 있을 만큼 많은 비가 쏟아졌다. 그 빗줄기를 바라보는 내 기분도 점점 가라앉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더 그랬다.
정신없이 보낸 3월이었다.
회사 일도 많았고, 개인적인 일도 많았다. 여기에 3월 개강으로 학업까지 병행해야 했으니 마음이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벌여 놓은 일이니 결국 내가 감당해야 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들이라 하나씩 붙들고 처리해 나갔다.
학업도 중요했지만 회사 업무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봄맞이 축제 대응이 한창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부단히런 봄소풍을 준비해야 했다. 예약부터 답사까지 챙겨야 할 일이 적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일복이 터진’ 상황이었지만,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들이었다.
특히 부단히런 봄소풍은 더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회원들이 경주벚꽃마라톤 참가를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처음 준비하는 행사이기도 했고, 전국 각지에서 시간을 내어 모여 주시는 정성과 의지를 생각하면 허술하게 넘길 수 없었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성실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그나마 경주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매일 벚꽃의 개화 상태와 날씨를 살폈다. 그러다 이번 주 예보를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행사 당일 강수 확률이 90퍼센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날씨는 수시로 바뀐다. 하지만 90퍼센트라는 숫자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비를 피할 수는 없을까. 집중하려 애써도 마음은 자꾸만 날씨 예보로 돌아갔다.
날씨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나는 또다시 쓸데없는 문제 해결 본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탓에 <문제해결사의 하루> 연재 글 발행까지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일찍 잠든 것도 아니었다. 비 예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새벽까지 뒤척였다.
문제는 비 자체가 아니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신경 쓴다고 달라지지 않는 일에 매달리고,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 태도. 그것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잠을 설쳐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를 멈추게 하는 일이 아니라, 비가 오는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정하는 일뿐이라는 것을. 날씨는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고, 나는 그 사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제주에서 비를 맞으며 변함없이 달리기 훈련을 이어 가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날씨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날씨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그 상황에 맞게 태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날씨라는 문제 앞에서 나는 다시 ‘날씨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한다. 어쩌면 삶의 많은 문제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드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를 바로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생각한다. 문제해결사의 자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