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울 수 있다는 역설
관리업무를 하던 시절, 외근을 나갔을 때 업무의 완결보다는 화장실과 주차공간에 대한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겼다. 사무실에서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화장실 사용이 어렵다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업무를 보는 근처에 항상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확보했다. 주로 관공서나 커피전문점을 선호했지만 나름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 급한 경우를 대비해 플랜비까지도 염두에 두었다. 요즘은 확실한 사용 가능성을 높이고자 검증된 나만의 장소를 자주 이용하는데 바로 도서관 화장실이다. 평일에는 경쟁자도 적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에 거리가 조금 있어도 여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몸에서 소화된 배설물을 배출하는 곳이다. 물론 손을 씻거나 옷매무새를 정리할 수도 있지만 화장실을 주로 대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다. 내가 유독 깨끗한 화장실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의 사건 때문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건물 내부에는 현대식 화장실이 있었고 외부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배에서 신호가 오자, 참다가 집에 가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계속적인 신호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이 잠겨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되는 집까지 뛰어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서 해결한 후 아래를 봤을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인지도 모를 만큼 쌓여 있는 흔적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화장실은 깨끗한 곳을 사용하려고 한다.
화장실은 선천적으로 깨끗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에서 배출되는 것은 눈물을 제외하고 더럽기 때문이다. 특히 소변과 대변은 악취를 수반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화장실은 적기에 관리를 하지 못하면 그 순간 더러운 곳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청결과 더러움의 대립으로 날카롭게 날이 선 공간, 바로 화장실이다. 잠시만 치우지 않아도 더러워지는 것은 쓰레기통이 아님에도 쓰레기가 버려져 금세 쌓이게 되는 현상과 아주 유사하며 이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책을 통해 소개된 사례이기도 하다.
더러움을 해결하는 공간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비움으로 채울 수 있다는 역설을 느끼게 한다. 몸에서 소화되고 몸에 유익하지 않은 것들을 배설하는 인체의 신비는 그 빈 공간을 몸에 유익한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본능에 의한 것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사자성어처럼 나는 단 맛이 나는 것만을 먹어 내 몸을 해롭게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하는 화장실이란 공간에서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는 속담이 주는 인생의 진리를 느낀다. 어쩌면 본디 화장실은 철학적인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