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부부 이야기
9살 아래 막내 여동생은 간호대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에 학습결손이 생겼고, 고등학교 때도 영어가 발목을 잡아 이과에 갔다.
수학을 잘 한 건 전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딸 넷 다 공무원이나 그 외 소위 말하는 안정된(?)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셨다.
지금이야 아들딸 구별 안 한다지만 80년대에는 딸만 그것도 넷이나 있는 부모님은 어딜 가나 좀... 패배자 취급을 받았다.
우리 자매들은 아들을 낳기 위한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 실패작들이고 말이다.
아빠 직장동료분이 우리들 앞에서 대놓고 "어떡하냐 늬들. 하나 아들로 나오지 좀" 하면서 혼내기까지 했던 게 기억난다.
나나 우리 자매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여하튼 실패작(?)인 딸들이 계속 실패작 취급 받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공무원으로의 진로 지도였고
어머니는 딸 셋을 문과 쪽 진로로 대학을 보낸 상태라
이과로 진학한 성적이 딱히 좋지 않은 막내딸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취업이 잘 되는 간호대로 가야 한다고 막내에게 세뇌교육시키듯 고등학교 3년 내내 얘기했다.
하지만 막내는 정시 1차 2차로 쓴 대학까지 줄줄이 떨어졌고(둘 다 지방 국립대였다) 전문대 3년제 간호대 추가모집이 없나 노심초사하던 차에 다행히 추가합격이 떠서 간신히 간호대에 갔다.
막내는 다행히 간호대에서 열심히 공부해 상위 10프로 성적을 올려 교육과정 이수도 할 수 있었다.
10학점만 들으면 정교사 2급 자격증이 나오고 임용고사 응시자격이 부여된다.
(동생이 다닌 대학이 이런 제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다를 수도 있고 학교마다 다르다)
그 당시 동생은 교사가 될 목적이 있었다기보단
목표했던 간호대에 합격했기에 맹목적으로 열심이었고.
거의 꼴찌로 합격한 본인이 대학와서는 상위권 학생으로 인정받는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 교육과정을 이수했단다.
그리고 대학병원에 취업을 했다
언론에서도 유명한 간호사들의 "태움"문화 때문에 동생은 입사 1년 차 때 우울증 약까지 먹어야 했다
엄마 말씀으론 '나이트'라는 밤샘 근무를 하고 나오는 동생을 데리러 병원 앞에서 기다릴 때 같이 퇴근하는 동료 간호사들 얼굴을 보면 다들 귀신처럼 보였다고 한다.
얼마나 파김치가 된 얼굴이던지.
안 힘든 직업이 어딨으랴마는 대학 병원 간호사는 정말 힘든 직업군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어쨌든 연차가 쌓이며 좀 나아졌고,
결혼하고 출산하며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조카 돌 지나며 어린이집 보내 놓고 임용고사 준비를 하더니 공부한 지 11개월 만에 합격해
지금 산골짜기 한 학년에 한 학급짜리, 그리고 한 학급에 10 명이 넘지 않는 작은 초등학교에 임용되고
그 학교에 딸려있는 관사에 살고 있다.
제부는 상고를 나왔고 내 동생과 같은 대학 기계과 출신이다.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제부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방황도 하고(담배를 이때 배웠다 한다.) 당연히 공부도 못했기에 상업고등학교를 갔는데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가난할수록 공부해야 한다.
라며 엄히 가르치는 선생님 덕분에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대학 진학반에 들어가긴 했는데
제부의 누나가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걸 보고 제부 또한 대학을 가는 대신 취업을 할까 했으나
누나가 대학 나와야 사람대접받는다고 적극 대학 진학을 권장해 갔단다.
제부는 군대 제대하고 영어를 공부하려 결심하고 도서관에 앉아 처음 몰라서 찾아본 단어가 "four" 일 정도로 기초가 없었다 한다.
그래도 성실히 공부해서 토익 900대로 올리고, 과 관련 자격증도 2개 따서 졸업하기도 전에 H사 공장 유지보수팀 엔지니어로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3명이서 3교대로 일하는 구조라 무슨 일이 생기든 아프든 정해진 날에 출근해야 하는 게 힘들었고, 또 공장 특유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2년 채우고 퇴사한다.
소방공무원이 되고 싶어 모아놓은 돈으로 1년 내 합격을 목표로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도청 청원경찰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이 달라졌다 하지만,
제부가 합격할 당시 국어, 사회 같은 과목을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 있어 직렬이 좀 달라도 과목이 같기에 여러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청원 경찰 시절 동생과 결혼했다.
동생과 제부와는 제부가 군대 제대 후 소개팅으로 만나 8년 연애했으나
제부가 안정된 직장을 잡기까지 시간이 걸려 결혼이 좀 늦어진 케이스였다.
여하튼 제부도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계속 소방공무원 시험에 도전해서 드디어는 합격했다.
조카가 돌도 안되었을 즈음 연수원에 들어가 동생이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제부가 임용되자마자, 동생에게 아기는 자기와 사돈어른이 번갈아가며 볼 테니 교사 임용고사 준비를 종용했었다고 한다.
이미 10년 가까이 근무해서 동생은 이제는 일이 수월해졌다했지만
대학병원에선 늘 긴장하고 죽는 사람을 봐야하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리고 연차가 쌓일수록 '나이트'근무가 준다지만 그래도 밤샘근무를 하고나면 수명이 깎이는 피곤함은 피할 수 없었기에
보건교사에 도전하게 된다.
소방공무원은 24시간 근무인지라 3일에 한 번씩 출근한다.
그러니까 한 달이면 열흘만 출근하는 셈이고,
또 연차를 쓰게 되면 거의 일주일을 쉴 수 있기에
제부는 눈치 보여도 동생의 공부를 위해 연차를 최대한 끌어다 썼다한다.
다행히 동생이 합격해서, 전셋집 계약 만료 시기와 맞물려 동생 학교 관사로 이사하게 되어 둘 다 엄청 행복해했다.
물론 행복한 것과는 별개로
간호사 시절 월급에 비해 초임교사로 월급은 반토막이 났고
(첫월급 168만원. 물론 연금을 좀 덜 넣으면 좀 낫겠지만 그래도 간호사 10년차와 비교할 수 없다.)
제부가 근무할땐 여동생은 혼자 아이를 보느라 힘들고
제부는 동생 발령지와 본인 근무지가 차로 왕복 3시간 이상 걸려 힘든 일상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지금 공부 못하는 10대분들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중고딩때 공부 좀 못해도 20대. 30대때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 진로를 헤매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 있는 20대에게는
'적성'이란 아마 유니콘 같은 것일 수도 있단 말을 해주고 싶다.
많은 직업들이 하다 보면 할 수 있고,
세상의 많은 직업들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그리고 적성이 맞지 않으면 좀 힘들지만, 바꾸는 경우도 이토록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30대에게는 아이 낳고도 공무원 합격한 사람들, 내가 봤다고, 정말 있다고, 그러니 그대들도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고,
40대에게는 현재 공부 못하는 자녀가 있다 해도
성실히 사는 방법을 보여주면,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평불만만 하며 주저앉지 말고
자기 분수를 알고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만 가르쳐준다면,
다 자기 몫 찾아가게 되어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 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나 본인에게도 다짐하는 내용이다 ㅎㅎ)
남혐, 여혐의 언어가 곳곳에 스며들고
수저 계급론으로 편 가르며 서로를 비웃고
우울과 무기력으로 얼룩진 언어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려고 노력한다고
그리고 노력하다 보면 진짜 원하던 것을 얻는 날도 온다고
그런 일들이 지금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삶을 사랑하자.
그리고 살아가자.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에 살 뿐 결코 미래에 살지 않는다
-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