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심을 다하면, 결국 내가 다친다.
나는 늘 매사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옳다고 믿고 살아왔다. 인간관계에서도, 회사 업무에서도 늘 같은 태도였다. 안전하고 행복한 직장 생활을 위해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게 남은 것은 과중한 업무와 상처뿐인 관계의 민낯이었다.
직장 생활 30여 년 만에 ‘나만 소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나를 소진시키며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나에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진심을 다했다. 내가 진심으로 해주면, 그만큼의 마음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래서 실망했고, 서운해했고, 상처받았다.
위기 상황이 왔을 때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던 사람도 본인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볼 것 같으면 무서울 정도로 벽을 쳤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많지 않은 피라미드 구조의 직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한다. 스무 살 무렵 내가 가졌던 인간관계의 마음을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이 문제였던 건 아닐까.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그때는 좋았고 애틋했고 서로가 필요했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도, 환경도, 생각의 크기도 달라졌는데 나는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한 채 ‘같은 온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태도는 아이들에게도 이어졌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고, 할 거면 제대로 하라.”
나는 좋은 뜻으로 했지만, 아이들은 또 얼마나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왔을까. 그 말이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겁이 많고 덜렁대는 편이라, 실수를 줄이려고 늘 세 번, 다섯 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 눈에는 내가 ‘꼼꼼한 사람’,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 ‘실행을 잘하는 사람’으로 비쳤고, 그 이미지가 굳어진 것 같다.
나도 그 기대에 맞추려 더 철저히 계획하고 지키려 했고, 그렇게 살아오며 ESTJ의 계획형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문자 T, 대문자 J’의 삶을 매일 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내가 나가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이제는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태도’를 배우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나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은 아니야.”
누군가와의 경계를 매일 점검하며 사는 일이 조금은 슬프지만, 업무든 인간관계든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매일같이 들었던 말들이 있었다.
“너는 열심히 좀 하지 마.”
“제발 좀 쉬셔요.”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대충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해도 괜찮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나로서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조직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좋다는 이유로 무난하게 받아들여지고, 상사도 과중한 업무를 그들에게는 쉽게 얹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구조 속에서, 나는 왜 늘 “내가 더 하면 되지”를 선택해 왔을까. 이제는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술도 마시고, 모임도 빠지지 않고 다닌 적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내게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예전에는 친구(직장 동료)도 없고 업무만 하며 인사만 나누는 동료가 이상해 보였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며 본인 커리어를 쌓았고, 인정받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버텼다. (나는 왜 직장에서 ‘친구’를 만들려고 그렇게 애썼을까...)
나는 “열심히 성실히 한다”는 이유로 문제 있는 부서에 수시로 발령 나곤 했다. 문제가 해결될 즈음이면 또 다른 복잡한 부서로 옮겨졌다. 그때마다 새로 공부해야 했고, 새벽까지 잠을 못 자며 나를 갈아 넣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믿었다.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맞게 살고 있다고,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엇이든 적정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선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타인의 인정과 관심, 상대의 말에 쉽게 상처받던 내가 가장 부족했던 것은 ‘나에 대한 집중’이었다. 앞으로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싶다. 업무, 가정, 나의 성장. 그 모든 것에 적정선과 균형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