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uty Inside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 홍대 '노벨리아서교'
봄이 왔다 싶어 잠시 개어놨던 두꺼운니트가- 아쉬울 정도로 동장군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마블 1도 모르는데 의외로 재밌었던 캡틴 마블이 내 머릿속에서 한발짝 멀어질 때, 눈에 들어온 서교동 노벨리아 건물에는 참 식상하지만서도 매혹적인 이름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뷰티 인사이드전'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니, 이 춥고 지저분한 날씨에 어떤 내면의 아름다운 모습을 꺼내어 보내준다는 것일까. 망설이는 나의 생각을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듯, 다은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단박에 '그 영화'의 한효주가 되어있었던 그녀였다. 이따금씩 이렇게 마법을 부린다. 평소 덤덤한 성격인 내게는 참 고마운 여자다.
전시장은 지하였다. 좁고 가파른 대리석 계단은 나를 빨아당기는 듯 하였다. 근래 찐 살 덕분에 중력의 힘으로 터벅터벅 걸어내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부는 단조롭지만 강렬했다. 안내하는 사람은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입장권을 끊어주었고, 우측의 문을 가리켰다. 빨갛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색의 빨간 문이 있었고, 벽은 파랗다 못해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짜 사기적인 배색이다. 정말 이 문 말고는 통로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놨다. 별 수 없지. 마치 이세계로 이어지는 문인듯 그 문은 우리 앞에서 그렇게 열렸다.
눈이 부셨다. 요새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기에 네온사인 만한 것이 없나보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커튼에는 분홍 빛깔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Beauty Inside''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네온사인 맞은 편에는 황금색 새장이 여러 개 달린 포토존이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 포토존이라는 사실에 취해 사진만을 갈구하기도 한다. 허겁지겁 사진을 찍고 나니 주변이 보이는 듯 하였다. 항상 내면의 아름다움은 저 새장 안의 새처럼 갇혀있음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한 번씩 자리에 앉아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싸보이고 빛나보이는 황금색 새장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자유로운 새의 날개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이리저리 핀 서랍장을 지나, 두 번째 섹터로 들어갔다. 좀 더 어둡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장소가 나타났다. 두껍고 반짝거리는 커튼이 반쯤 걷혀 있었다. 마치 중국 당대 측천무후의 호화스런 의상과 침실을 연상시키는 듯 하였다. '모든 사치스러움 또한 그들 아름다움만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사치스럽지는 않다. 당연히 사치스러운 것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것들을 모두 아름답지 않다고 평하기엔 아직도 내면의 소박한 아름다움에게 못내 미안한 일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한층 솔직해질 수 있다. Be Proud of your inside! 가장 당당할 때 너다운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커튼 뒤 자리에 앉아본다.
꽃과 거울의 방을 지나, 세 번째 섹터로 들어온다. 친환경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설치된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분홍색 의자와 공간 위로 거대한 개미 세 마리가 올라간다. 거대해 봤자 내 머리통보다 작은 사이즈이다. 줄지어 가는 개미들은 자유자재로 벽을 기어오른다. 인간이 걷지 못하는 벽타기 3D보행으로 어디를 가는건지 모를 일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황금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굳이 개미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황금색을 띄고 있다. 아무리 개미는 보호색이 없다고 하여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본다.
문득 이 분홍색 공간이 내 잇몸의 검(잇몸질)이지 않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조심스럽게 이 개미들을 놓아주기로 한다. 개미들은 언젠가 이 단단한 잇몸질의 방을 벗어나 보금자리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는 깨닫겠지. 아 내가 필요한 것은 황금이 아니라 조용한 보금자리였구나. 나의 내면이 원하는 것 또한 황금이 아니라 그저 숨쉴 수 있는 공간일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냄새나는 잇몸질 속의 공간이 아니라. 웩ㅡ.ㅡ 나는 또 다시 조심스럽게 내 잇몸같은 분홍 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한마리 개미가 되어 보금자리로 향해보고자 한다. 안녕 잇몸질들아.
건너편에는 활엽과 침엽이 어우러져 하트의 형상을 하고 있는..그리고 그 안에 네온의 하트가 자리하고 있는 설치물이 있었다. 나의 불찰로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아, 지나가던 커플1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트형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할 수 있었다. 혹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연인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물론 어떤 뜻으로 얘기했는지 알고 있다. 허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조차 볼 시간이 없다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은이 사이의 하트를 바라보고, 또 오늘따라 예뻐보이는 다은이를 보고 있으니 저절로 나의 내면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담금질을 거쳐 단단해지고 침엽수처럼 외부의 시련을 이겨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좀 더 깊은 곳을 바라볼 줄 알고, 같은 곳을 놓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윽고 마지막 포토존이 나타났다. 흡사 성황당 나무를 연상시키는 색동 천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이 뒤에 뭔가 있는건가?' 생각하고 파고들어갔지만, 민망함만을 남겨줄 뿐이었다. 이럴 때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잡생각 않고 돌진할 수 있는 용기가 때론 내면의 순수한 열정을 아름다움으로 치환시켜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파로마!!!'. 이건 또 뭔가? 역시 90년대생이다. 화장짙은 파로마가구 CF모델 대신 우리가 색동천을 열어제켰다. 함박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유쾌함으로 내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밖으로 나오니, 을씨년스러운 바람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청량한 도시의 공기가 코를 휘감았다.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고독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준 한 때였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그렇게도 우리들 안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잊지말고 이따금씩 꺼내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