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냉동 브로콜리에서 시작된 의문

블랜칭, 열과 시간이 영양을 어떻게 앗아가는가

by 조은희

2부 What’s Lost 가공과정에서 사라진 영양

4장. 열과 시간의 대가 _가공기술이 빼앗은 영양소 (1)


초록빛을 지키는 기술, 블랜칭

마트에서 흔히 사는 냉동 브로콜리. 해동해 보면 선명한 초록빛이 살아 있어 신선해 보인다. 그런데 이 냉동 과정에는 꼭 필요한 단계가 숨어 있다. 바로 끓는 물에 잠깐 데쳤다가 얼리는 [블랜칭(blanching)]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 과정은 식품의 운명을 바꾼다.


왜 굳이 데쳤다가 얼릴까? 이유는 효소 때문이다. 수확한 채소 속 효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을 바꾸고, 맛을 변질시키며, 결국 부패로 이어진다. 짧은 시간 뜨거운 물에 담그면 이 효소의 활성이 꺼지고, 식품은 오래도록 신선해 보이는 색을 유지할 수 있다.


영양소는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대가도 따른다. 비타민 C나 엽산처럼 열에 약한 영양소는 이 짧은 순간에 상당량이 손실된다. ‘잠깐 데쳤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사라진다고?’ 싶을 정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브로콜리를 2분간 블랜칭 하면 비타민 C의 30~50%가 줄어들 수 있다. 색은 살아남지만, 영양은 이미 절반 가까이 날아간 셈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데친 뒤 얼리는 과정은 소비자의 눈을 속인다. 싱싱한 초록색은 그대로지만, 영양은 이미 빠져나갔으니 ‘겉과 속이 다른 음식’이 된 것이다. 소비자는 색으로 신선함을 믿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양 손실이 진행된 상태다.


앞으로 다룰 이야기들

이처럼 열과 시간은 식품을 안전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영양을 앗아간다. 블랜칭만의 문제가 아니다.

냉동 브로콜리 한 봉지에서 시작된 작은 의문은, 사실 우리가 매일 먹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적용되는 진실이다. 음식은 왜 더 오래가면서도 영양은 짧아지는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이 이제 시작된다.


앞선 연재(3~26)에서 살펴본 '1부 What’s Added(감각을 조작하는 첨가물의 세계)' 다음으로 이어질 글은

'2부 What’s Lost(가공과정에서 사라진 영양)' 편으로,

4장: 열과 시간의 대가,

5장: 과잉으로 설계된 맛의 함정,

6장: 오래가는 식품, 짧아지는 건강 순으로 가공식품의 또 다른 이면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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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Luci's Lab의 <食解, 가공식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시리즈의 일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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