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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Mar 17. 2021

“일 할때 엄마 싫어요”

세찬이가 엉엉 울면서 한 말

남편은 형제만 둘이 있다.

세 형제 키우시며 시어머니가 딸 없는걸 가끔 섭섭해 하실 때가 있다고 그랬는데 그래도 남편의 형이 결혼 할때, 또 나와 남편이 결혼 할때 이 집안에도 딸들이 생긴다며 기뻐 하셨었다.

세진이가 딸이란 걸 알고 처음에 안믿으셨을 정도로 기뻐하셨다.


시어머니에게는 조카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딸처럼 정말 가깝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멕시코에서 피부과 의사로 일하는 언니인데, 일년에 두어번씩 휴가 내며 캘리포니아에 있는 우리 집을 방문 할 정도.

집안에 크고 작은 일 있을 때 마다 와서 같이 축하해주기도 했다 (나와 남편의 결혼식이라던지, 세찬이 세진이 태어날때라던지).


세찬이 6개월때 즈음 멕시코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내친김에 가서 유아 세례를 받고 왔었다 (나의 즉흥적인 생각이었는데 가족들이 다 도와주셨다).

시어머니가 카톨릭교이셔서 (= 남편 포함 다른 가족들은 교회 안나감..) 카톨릭 식으로 세례를 했는데, 그때 이 언니가 대모가 되어주었다.


지난 주말 이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이다.


***


세찬이는 두달 후면 곧 만 네살이 된다.

영어는 유투브에서 주워듣거나 가족들이 사용 하는거 곧잘 듣고 잘 하는데, 아직 한국어나 스페인어는 영어만큼 잘 하지 못한다.

시어머니 계실 땐 스페인어로 말 하면 대답도 잘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영어 위주로만 쓴다.


마침 멕시코에서 손님이 와 있고 하니 가족들이 힘을 모아 세찬이에게 스페인어를 하라고 부추겼다.

멕시코에서 온 세찬이의 대모 언니는 “스페인어로 말 하면 세찬이가 좋아하는 범블비 장난감 사줄게”라고 달래보기도 했다.

세찬이가 내 폰에 스크린샷 찍어놓은 범블비 장난감

장난기 많은 남편의 형은 “스페인어 안쓰면 나중에 멕시코 돌아갈때 얘 데리고 가! 그래야 가서 스페인어 배워오지. 내가 내일부터 멕시코 가져갈 얘 짐 다 싸줄게!”라고 짖굳게 놀리기도 했다.


나도 안되는 스페인어로 끙끙대며 가족들이 다 스페인어로만 말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세찬이는 꿋꿋하게 영어로만 말 했다.

고집이 장난이 아닌 세찬이.

자기가 완벽하게 말 할수 있을때까지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안 할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남편, 세찬이의 대모 언니, 남편 동생 이렇게 셋이 집 근처에 요거트를 사러 나갔다.

그 사이에 세찬이는 할아버지 탁자 위에 있는 젤리를 발견하고는 먹고싶다는 눈치를 나에게 보냈다.


할아버지꺼니까 할아버지한테 달라고 해야지. 근데 스페인어로 말씀 드려야돼”


그러자 세찬이가 울먹거리며 자꾸 나를 할아버지쪽으로 데려가려고 그런다.


엄마가 세찬이 따라 가긴 할건데, 할아버지한테는 세찬이가 직접 말씀 드려야돼. 엄마가 도와줄게 할아버지한테 말 해봐 — me da sus gomitas, por favor? (젤리 좀 주시면 안될까요?)”


단어 하나 하나 알려줘도 끝까지 입도 벙긋 안하는 세찬이.

결국 내가 홱 돌아 주방으로 가버리니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


세찬이를 주방 카운터탑에 앉히고 왜 우냐고 물어보니 “I am sad” 란다.


꼭 안아주면서 울지 말라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mom, I missed you.”

가족들이 스페인어 하라고 압박해서 스트레스를 받은걸까?


“엄마 하루종일 집에서 일 했는데 miss you 라니?” 물어보니 기다렸다는듯이 말 한다.

“I don’t like you when you are working.”


I don’t like “it” when you work 도 아니고, I don’t like “you” 라니!!

엄마가 집에서 일 하는게 싫은게 아니라, 그냥 일 하는 엄마모습 자체가 싫다고 콕 찝어 말한다 (으윽 뼈때리지마 세찬아..).


집에서 재택근무 하면서 미팅도 많고 여기저기 전화 하고 받을 일도 많아서 옆에 있는 세찬이에게 무섭게 “쉿!!” 할때가 많은데, 아마 그런 모습이 낯설고 싫은거겠지 ㅠㅠ

그래도 세찬아, 엄마가 세찬이 장난감 사주려면 일을 계속 해야하는데 어떡하지..


육아휴직때 세찬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면

세찬아 엄마 요즘 일 안하는거 알지. 그래서 돈이 없어서 우리 장난감 못사.”라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댔었는데.

그래서 세찬이는 나의 복직 1주일 전부터 조금 들떠 있었다. “Now you can buy me more toys! Work 엄마, work!”


자기 아침이나 점심 먹을때도 굳이 나 일 하는 방에 들어와서 내 옆에서 먹으려고 하고.

유투브나 뭐 볼때도 내 옆에 앉아서 보려고 하고.

미팅 하는동안 자꾸 뭐라뭐라 말해서 “세찬아 너 자꾸 시끄럽게 하면 엄마가 너 쫓아내고 문 잠궈야해”라고 말 하자마자 “Sorry...” 말하던 세찬이 (그러고 또 바로 떠들긴 하지만).


“I don’t like YOU when you work”이라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도는 밤이다.

당장 내일도 계속 일 해야하는데 어쩜 좋나.

그래도 밖으로 출근 안하고 집에서 재택 하는 마당에 아들내미에게 좋은 소리까지 기대 하는건 넘 복에 겨운 생각인가?


좋은 직장인임과 동시에 좋은 엄마가 될순 없나.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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