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이의 첫 동네 친구들
세찬이는 지금 미국 나이로 3.5살, 한국 나이로 5살이다.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들은 진작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세찬이는 지금까지 데이케어에 가본 적이 없다.
최근 1년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부하고 일 하느라 밖으로 도는 동안 시어머니께서 집에서 아이를 직접 돌봐주고 싶어하셨던 영향이 크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 손에 아이를 맡기면 그 사람이 아이를 혹시라도 때리거나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어서 절대 못 맡기겠다고 그러셨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 동네 공원에 세찬이 데리고 놀러 나가면, 동네 애들 노는 와중에 엄마들이 애들은 잘 보지도 않고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며, 어떻게 엄마들이 그럴수 있냐고 한탄 하시곤 했었다.)
세찬이가 몇일 전 대뜸 나한테 말했다.
"엄마, I don't have any friends."
사실이긴 하지만 뭔가 억울한 말이었다. 친구 사귈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인데!
이제 시어머니가 "별"에 가 계신 지금.
난 둘째가 태어난 11월 중순부터 다음달 2월 중순까지, 3개월간 육아 휴직 중이다.
다시 일 하기 시작하면 애들을 집에서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재택 근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갓난 아기 세진이와 세살 배기 세찬이, 두 아이를 돌보며 하루 8시간씩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터.
슬슬 세찬이를 어딘가 보내기 시작 해야 하나 싶어서 집 근처 데이케어, 태권도장 등을 조금씩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아니면 일 하는 동안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실 내니(nanny)를 알아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고.
***
코로나 이후로 동네 산책도 잘 안나가던 우리 가족이지만 세찬이는 늘 밖에 나가고 싶어한다.
한참 햇볕 보고 풀 밟고 자라날 나이에 그렇게 좋아하던 공원이나 놀이터도 못 가고 집에만 틀여박혀 있어야 하니 얼마나 심심할까?
지난 주 금요일, 세찬이가 기회를 엿보다가 또 집 앞 길가를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엔 거리가 텅 비어 있는데 이 날은 저 멀리서 두 아이와 보호자 한분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세찬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반가워서 막 가로질러 뛰어가고, 나는 뒤에서 평소처럼 영어랑 한국어 섞어서 소리 지르며 세찬이를 저지 하려 했다.
"세찬아, we have to go back home! We are not wearing masks! 마스크 안 썼잖아 집에 가자!"
세찬이가 내 말을 듣고 다시 되돌아 뛰어 오려고 하는데, 저 멀리 계신 보호자분께서 대뜸 "한국분이세요? 아이고 반갑네!" 하며 성큼성큼 다가오신다.
마스크 쓰고 계신 이 분은 한국에서 딸을 방문중이신, 같이 산책 하고 있는 이 두 남매의 외할머니라고 그러셨다.
세찬이와 두 아이들은 그새 친해져서 우리집 차고 앞 공간에서 놀기 시작했다.
9살짜리 오빠(세찬이에게는 형)와 2살짜리 여동생, 그리고 3살짜리 세찬이 이렇게 셋이서 한참 숨바꼭질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놀았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와 내가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따님이 우리집 맞은편 길 옆옆집에 살고 계셨다. 이 동네에 한국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사 온 지 4개월 되었다는데 코로나때문에 서로 밖에 잘 안나가서.)
집에 돌아가시는 길에, 딸이랑 인사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하셔서 흔쾌히 그렇게 하고 왔다.
따님은 나보다 몇살 많은 언니였는데, 폰 번호도 주고 받고, 그 이후로 서로 카톡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 날 이후로, 오후 느즈막히 아이들이 서로 만나 30분-1시간 정도 논다.
세찬이랑 9살 형아는 만날때마다 반가워서 서로 소리를 꺅꺅 지른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밖에도 제대로 못 나가는 애들에게는 이렇게라도 잠깐 만나 노는게 큰 낙일 것이다.
우리집 차고는 연장과 공구들이 많아 아이들이
놀기엔 조금 위험하기 때문에 주로 두 남매의 차고 앞에서 논다. 남매의 차고는 온갖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2살 아이는 차고에서 간이 의자들을 가지고 와서 엄마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고, 9살 아이는 물총, 온갖 공 등의 장난감을 가지고 나와서 동생들을 이끌며 놀이를 주도 한다.
길가에 차들이 자주 지나가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주 주의를 준다. 특히 공놀이 할때에는 공이나 아이들이 차도로 나가지 않는지 더욱 신경 써야한다.
***
언제 한번은 양 집안에서 비눗방울 총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이 놀았다.
원래는 남매의 차고에서 나온 물총을 가지고 놀던 중, 2살 아이가 “버블! 버블!” 말하며 비눗방울을 만들고 싶어했다.
세찬이에게 얼마 전 멕시코 친척들이 선물로 보내주신 비눗방울 총이 있다는게 기억 나서 집으로 돌아가 금방 비눗방울 총을 가지고 다시 나왔다.
그 사이 남매들도 비눗방울 총 하나를 찾아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비눗방울이 날리고 아이들 셋이 깔깔대면서 주변을 뛰어다니는데, 그 광경 속에서 잠시나마 코로나 바이러스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1년 가까이 동네 공원/놀이터도 못 가고 있는
와중이지만 이날만큼은 세찬이도 예쁜 추억 하나 더 만들었겠지?
처음으로 생긴 동네 친구들이라 그런지 세찬이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형아랑 동생이랑 놀아도 돼요?” 물어볼 정도로 두 남매를 좋아한다.
아마존에서 시킨 새로운 장난감이 배달오면, 포장 뜯는 와중에 “형아한테 보여줄래요” 말할 정도.
요즘 매일 할일 몇가지를 정해서 시키고 있는데 (피아노 두드리기, 교육용 앱 몇가지 하기 등 간단한 것들) 조금 지루해 하거나 안하고 싶어 할때 세찬이를 꼬시는 제일 효과적인 말은 “이거 빨리 해야 이따가 오후에 형아랑 동생 만나서 놀지?” 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의 일상이 그립다!
아이들이 차고 앞이 아닌, 동네 놀이터에서 걱정없이 뛰어다니게 될 날이 어서 돌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