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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Dec 30. 2020

천사와 별

엄마, 사람들이 슬플땐 눈물이 나오고 눈이 빨개져요

세찬이는 요즘 여러 단어들의 뜻을 배우고 있다.

아직 따로 뭐 학습지를 시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일상 생활이나 유투브 비디오, 스포티파이 노래 등에서 들리는 단어들 중 자기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꼭 나에게 질문을 한다.

엄마, 이 단어는 좋은 단어에요, 나쁜 단어에요?”


특히 요즘은 자기가 그 전부터 알고 있던 단어라도 꼭 한번씩 더 되물어 본다. 자기 나름대로 카데고리화 시키는 것 같다 (좋은 말, 나쁜 말, 보통 말, 무서운 말 등).

언젠가 한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죽는다는 건 좋은 단어에요, 나쁜 단어에요? (Umma, is “die” a good word or bad word?)”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겠지만, 세찬이가 이 질문을 한건 죽이다 (kill) 단어에 대해 물어보고 난 뒤라, 난 서슴치 않고 대답 했다.

그 단어는 나쁜 단어야. 그래서 너무 자주 그 말 쓰지 마 (It’s a bad word. Try not to say that word too often).”


***


12월 28일.

전 날도, 그 다음 날도 여느때 처럼 캘리포니아 해가 쨍쨍 했지만 왜인지 이 날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부슬비부터 시작 해 우박까지 떨어지는 이상한 날이었다.


오전 11시 30분 경, 지난 1년 간 아프셨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세찬이 세진이와 나는 평소와 같이 2층 우리 방에 있었는데, 아랫층에서 어머니 병상 곁에 있던 남편이 올라와 말했다.

“엄마 돌아가시려고 해 (She is passing now).”

울고 있는 남편의 눈이 빨갰다.

남편은 나에게 세찬이 세진이와 함께 2층에 계속 있어 달라고 말 했다. 아랫층 상황이 아직 어린 세찬이에게 무서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동생 등 다른 가족들이 1층으로 내려간 사이, 세찬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돌아가시는 게 무슨 뜻이에요? (Umma, what does he mean by “passing?”)”

나는 to pass away 와 to die 가 같은 뜻이란 걸 설명 해줬다.


세찬이는 또 물었다.

그런데 죽는다는 말이 나쁜 말이잖아요. 왜 할머니한테 그 말을 써요? (But you said “die” is a bad word. Why do we use the word to abue?)”

(세찬이는 시어머니를 abue라고 부른다. 시어머니는 스페인어로 “귀여운 할머니”인 abuelita라고 불리길 원하셨었다.)


나는 세찬이가 헷갈리지 않게 최대한 풀어서 설명해주려고 노력 했다.

“죽는다”는 말은 보통 일상에서 조심해서 써야 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이 일은 결국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있다고.

세찬이는 반 정도 알아들은 눈치였다.


얼마 후, 남편이 다시 우리 방으로 올라 왔다.

내려가서 엄마께 인사 드리고 와.”

세찬이를 데려가고 싶었는데, 일단 내려가서 상황을 보고 난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남편과 얘기 한 후, 1층으로 내려 갔다.


***


1층 어머니 병상 곁에는 시아버지, 남편의 형, 남편의 동생, 그리고 호스피스에서 나온 간호사가 있었다.

이 날 이 시간, 간호사는 원래 집에 올 때가 되어서 우리 집에 온건데 (시어머니가 11월 중순 병원에서 퇴원 하신 후로, 호스피스 간호사들이 1주일에 2-3번씩 방문해 시어머니 상태를 체크 하곤 했다) 타이밍이 어머니 임종 때와 딱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시아버지께 세찬이를 데려오고싶다고 말씀 드렸고, 시아버지는 선뜻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위층에서 내려온 세찬이에게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께 뽀뽀를 해 주라고 부탁 하시며 세찬이를 번쩍 들어 올리셨다.


주변을 돌아 본 세찬이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사람들 눈이 왜 다 빨개요?”

나는 우리가 슬퍼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게 슬퍼서 우는거라고 대답 했다. 그러자 세찬이는 다 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사람들이 슬플땐 눈이 빨개지고 또 거기서 눈물이 나와요.”


평소 세찬이를 예뻐라 하는 남편의 형이 세찬이를 데리고 뒷마당에 나간 사이, 나는 2층에서 세진이를 데려와 할머니 곁에 잠깐 눕혔다.

시어머니는 마지막 몇일 동안 심한 통증 때문에 독한 약을 드셔야 했는데, 부작용으로 잠이 엄청 쏟아지게 하는 약이었다.

약 기운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세진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항상 주변 가족들에게 “애기 울어요, 애기! 제발 누가 가서 애기 좀 봐줘요..” 하고 말씀 하셨다.


***


뒷마당에서 돌아온 세찬이는, 남편의 형 에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새로 배워 온 모양이었다.

엄마, 루이스 삼촌이 이제 할머니는 별나라에 간 거래요. 근데 할머니가 별나라에 어떻게 가요? (Umma, tio Luis told me abue is going to the star. But how can she go to the star?”


나는 천사들이 할머니를 별나라에 데리고 갈거라고 말 해줬다. 그러자 세찬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천사들이랑 할머니랑 별나라 갈때 하늘을 날아서 가겠지요? 비행기나 헬리콥터 처럼? (When they go to the star, will they fly the sky? Like air plane or helicopter?)”


***


어머니가 아프신 내내 세찬이는 전체적인 상황을 완전히 이해 하지는 못했었다.

퇴원 하시고 돌아온 어머니께 숨바꼭질 하자고 줄곧 조르기도 했었다 (“Abue, let’s play uno, dos, tres”).


최근 몇주 간 어머니 상태가 점점 나빠질 때에도, 세찬이는 할머니 병상 곁에 오면 할머니와 얘기 하는것 보다도 그 옆에 있는 커다란 텔레비젼에서 스파이더맨 게임 하는 걸 더 좋아 했다.


내가 세찬이에게 주의를 주려고 하면 다른 가족들이 (특히 세찬이를 많이 예뻐하는 남편의 형이) 그냥 두라고, 아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거니 괜찮다고 그랬었다.

남편의 형은 세찬이가 바지 입은 원숭이나 다름 없다고 그랬다. (“Dont’t worry about him. He does not understand. He is like a monkey with pants.”)


이 바지 입은 원숭이도 그래도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다는 건 이해 했었고, 특히 남편이나 내가 울거나 슬퍼할 땐 옆에 와서 자기가 기쁘게 해주겠다며 뒷마당에서 가져온 꽃을 주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시아버지가 세찬이를 부르셨다. 시어머니 사진들을 보고 계셨는데 세찬이와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세찬이에게 보여주려고 부르신 것이다.

이 사진들 봐라. 이 작은 원숭이가 누구야? (Look at these pictures. Who is this changito?)”


세찬이는 울면서 대답 했다.

저에요. 할아버지, 저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 걷는걸 보고 싶어요. (It’s me! Abuelo, I miss abue. I want to see her walking).”

할머니 보고 싶어? 나도 (You miss her? Me too).”

시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찬이를 많이 많이 사랑하신 시어머니.

세진이 영어 이름을 지어주신 시어머니.


세찬이 말 처럼 시어머니는 이제 고통 없는 별나라로 가셨지만, 한동안 우리는 시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많이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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