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이의 질투 아닌 질투, 엄마는 이해해
요즘 세진이의 밤중 수유 텀이 4-5시간에 한번 정도로 바뀐 것 같다.
저녁 8-9시쯤 젖 먹여 재우고 나면 세진이는 새벽 1시쯤 한번 배고파 깨고, 그 다음에 4-5시쯤 또 일어나 한번 젖을 먹는다.
세진이가 태어나기 전, 세찬이와 나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이 드는게 일상이었다.
잠 자러 가기 전 동화책 한두권 정도 같이 읽고 (세찬이는 영어 책을 더 좋아라 하지만 가끔 한국어나 스페인어 책도 집어오기도 한다), 세찬이가 좋아하는 자장가 네 곡을 순서대로 불러주면 (세찬이도 나도)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세진이가 태어난 후, 세찬이 잠드는 시간에 내가 세진이 젖 물리고 있는 경우가 많아 예전처럼 세찬이 자는 곁 바로 옆에 내가 누워있지 못할 때가 많다.
다행히 남편이 애들 재우는 시간에 같이 방에 올라와 세찬이 옆에 있어주긴 하지만, 그래도 세찬이가 "아니, 엄마가 여기 누워요" 하고 심통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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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이가 태어난 다음날, 아기를 데리고 처음 집에 돌아온 날 세찬이는 아기를 보며 참 신기해하고 좋아 했다.
"축하해! 이제 세찬이는 오빠야!" 라고 말하는 내게 자기는 오빠가 아니라 그냥 어린이라고 그랬다 ("I'm not a big brother! I'm just a big boy.").
세진이가 예정일보다 2주정도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내가 세진이 낳으려 병원에 간 날에 남편이 부랴부랴 세진이 아기 침대를 조립 했었다.
그날 밤, 병원에 있는 나에게 남편이 사진을 하나 보내왔는데 세찬이가 세진이 아기 침대에 들어가 자는 척 하는 모습이었다.
생후 1-2주 정도 세진이의 몸무게가 잘 늘지 않아서,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권하신대로 젖을 우유병에 담아서 주곤 했었는데 세찬이가 또 그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음료수를 우유병에 넣고 마시겠다고 몇번이나 그랬었다.
또 세찬이는 평소에 샤워 하기 싫어하는 아이였었는데, 내가 세진이 데리고 같이 샤워 하겠다고 하는 날이면 자기도 아기랑 같이 씻겠다고 샤워 부스 안으로 먼저 발가벗고 들어가곤 한다.
아기가 하는건 자기도 하겠다고, 질투 아닌 질투를 표현하는 세찬이다.
그러면서도 아기를 참 예뻐하긴 한다.
세진이가 낮잠 잘때 옆에다 귀여운 인형을 놓아주기도 하고, 아기가 칭얼대려고 하면 "Don't cry, little sister!" 하며 모빌에서 나오는 자장가 노래를 직접 켜 주기도 한다.
모빌이 없는 간이 침대에서 세진이가 자고 있을 때에는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자장가를 직접 불러주기도 한다 (반짝반짝 작은별. 평소에 내가 노래 불러달라고 할땐 자기 노래 못한다며 끝까지 안불러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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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세 시 반 쯤, 세진이가 우는 소리에 깨 젖을 먹이고 있었다.
옆에서 세찬이가 부스럭부스럭 일어나더니, "Oh, it was the baby. I thought it was a monster (아 아기 우는 소리였구나, 난 괴물인줄 알았네)" 하고 잠꼬대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아기 배고파서 밥 먹이는 중이라고, 어여 더 자라고 하니, 세찬이는 금새 잠이 들었다.
젖을 다 먹이고 잠이 안와 폰을 1시간 정도 만지고 있었는데, 새벽 5시 무렵 세찬이가 물어봤다.
"엄마, is it morning? (엄마, 지금 아침이에요?)"
평소에도 잠꼬대 많이 하는 세찬이인데 (자기가 축구공이라던지, 배게가 차가우니 따뜻하게 해달라던지) 왠지 이번은 잠꼬대 치곤 발음이 너무 정확했다.
"아니, 아직 아침 아니야. 조금 더 자자 세찬아!" 대답 해줬더니, 자기 배고프단다.
("엄마, I'm hunmmy" -- hungry 발음이 안되어서 hummy 라고 그런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서 아침 같이 먹자고 그랬더니, 그래도 자기는 지금 당장 배가 고프단다.
아까 아기가 배고파서 밥 먹는거 보고 자기도 지금 뭔가 먹고 싶은 눈치였다.
세찬이가 세진이를 조금 질투해서 그러나 싶기도 했지만, 또 정말 배가 고픈거 같기도 해서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피미 앤 제이"가 먹고 싶단다.
'피미 앤 제이' 가 아니라 '피비 앤 제이 (PB&J = peanut butter & jelly, 땅콩버터와 딸기잼이 들어간 샌드위치)' 라고 알려주고선 같이 1층으로 내려가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2층 침실에 올라와서 세찬이는 침대에 걸터 앉아 그 자리에서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정말 배가 고팠던 모양이긴 하다.
세찬이 먹는 모습을 말그대로 엄마미소 지으며 물끄러미 쳐다봤었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귀엽고, 또 내 배가 괜히 부른 것 같았다.
방에 있던 망고 주스를 두모금 정도 마시게 하고, 다시 세찬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평소에 이 닦기 싫어하는 (귀찮아하는?) 아이인지라, 일단은 지금 자고 몇시간 뒤에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이를 닦자고 말 했다. 이 안닦으면 충치 생긴다고.
그랬더니 왜 충치가 생기냐고 뜬금없이 물어보는 세찬이.
세찬이가 물어보는 질문들마다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대답해주려 노력 하는데, 지금 아이를 재우는것도 중요하지만 이걸 대답 잘 해주는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드위치에 있는 딸기잼에 뭐가 들었지? 설탕. 세찬이가 설탕 좋아하는것처럼 입에 사는 박테리아들도 설탕을 좋아 해. 근데 이 박테리아들이 충치가 생기게 하는거거든. 그래서 샌드위치 먹고서 이 안닦으면 충치가 생기는거야."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나 지금 이 닦을래요."
오잉? 이게 웬 횡재. 세찬이가 드디어 이닦기의 중요성을 깨달은건가.
결국 새벽 다섯시에 세찬이는, 샌드위치도 먹고 이도 닦고선 꿀잠을 잤다.
세찬이는 아침 9시 반 쯤에 일어났지만 나는 거진 12시가 될때까지 못 일어난건 안비밀 (남편과 다른 가족들이 집에 있어서 맘 놓고 늦잠을 잘수 있었다).
***
아침에 일어나 남편에게 새벽에 있었던 일을 얘기 해주니, 남편도 요새 세찬이가 세진이 하는거 다 하고싶어하는 눈치인거 같다며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언젠가 세찬이에게 "엄마는 세찬이랑 세진이 똑같이 사랑하는데, 아직 세진이가 아기라 엄마가 세진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돼. 그래서 세찬이가 섭섭하기도 하겠다, 그치?" 얘기 해준 적이 있었는데.
세찬이는 이 말을 다 이해 했을까?
어서 세진이도 세찬이만큼 자라서 둘이 놀기 시작하면 좋겠다.
서로 질투하지 않고 사이좋게 자라는 남매로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