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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Oct 31. 2021

엄빠의 세탁소

무상으로 일하는 어린이 (어른이) 일꾼

2008년에 미국에 엄마, 아빠, 나, 동생 둘 이렇게 다섯 가족이 가족이 이민을 왔다.

나는 한국나이 18살 고2였고 (여고 이과반이었는데! 자퇴서 내고 이민 올때의 짜릿함!) 부모님은 40대 중후반이셨다. 나도 부모님도 큰결심 하고 미국 이민을 결정 했다.


미국 온지 얼마 안되어 부모님은 동네 망해가던 (?) 세탁소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하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10년 이상 같은 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신다.

월-금 7시-7시 + 토요일은 8시-5시, 이렇게 주 6일 일 하시는데 그동안 문 닫은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미국에서 크게 세는 휴일 4-5일정도는 쉬신다: 신정, 독립기념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정도).


미국 와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다니며 차가 없던 시절, 아빠가 학교 데려다주시곤 했는데 학교랑 세탁소가 가까워서 수업 없는 시간이면 세탁소에 와서 일을 돕곤 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 (내가 내일모레 만 나이 서른이라는게 안믿긴다! 하긴 한국나이로는 내년이면 32살.. 헐)


대학교 2학년때 차가 생긴 이후로 자연스레 세탁소 일을 덜 돕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는 집에서 7시간 떨어진 도시에 있는 주립대로 편입을 하며 세탁소 무상 일꾼이던 어린이(= 나)는 더이상 세탁소 일을 돕지 않게 되었다.


***


아빠는 정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세탁소 일을 해 오시고 계신다. 당뇨 진단과 신장 기능 저하로 일주 3번 투석 받으시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세탁소에 계시며 일 하신다. 주 담당은 빨래와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 지우기 담당. 가끔씩 세탁물 배달 요청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몇 단골손님들에게 배달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요즘은 거의 없는듯 하다.


엄마도 딸들 대학교 졸업식 (셋다 UC Berkeley! Go Bears!) 참석할때만 빼곤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오고 계셨다. 엄마 주 담당은 카운터와 옷 수선. 물론 다른 자잘한 일들도 하신다.


그러던 엄마가 미국 오신 이후 처음으로 1주 휴가를 내기로 결정 하셨는데 ..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가 요즘 병원에 자주 가게 되시고 (큰 수술 하신후 퇴원, 그리고 큰 차 사고가 나 또다시 입원) 중환자실에서 지내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왕 오랫만에 한국 나가는거 2-3주 있다 오시면 좋겠지만 또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딱 1주만 채우고 오시기로 결정되었다.


아빠는 투석을 격일마다 받으셔야 해서 한국 나가는게 쉽지 않으시다. 아빠 투석 가계신동안 (한번 가시면 3-4시간) 내가 세탁소에 그 시간들 만큼이라도 도와드리기로 했다.

(미국에 계신 친할머니/친할아버지가 아빠를 도우러 1주간 세탁소에 같이 오시기도 했지만 아빠 투석 가 계신동안 당신들끼리 계실 걸 특히 불안해 하셔서)


***


10년도 더 전에 도왔던 경험뿐이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때랑 흐름이 별 다르지 않았다.

손님이 옷 가져오면

시스템에 손님 & 옷 입력 하고

인보이스 출력

인보이스 & 옷들 태깅 (색색의 번호표 붙여서 손님옷 구분)

옷 빨고 & 다리고 & 다시 나오면

손님들 옷 별로 찾아 모으고

번호표들 떼며 옷 수량 확인 하고

옷들 포장 (배깅) 하고

천장에 돌아가는 돌돌이(?) 랙에 옷들 집어 넣으며 시스템에 랙 번호 입력

손님이 옷 찾으러 오면 시스템에서 확인 해서 옷 찾아주고 (또 새로 빨 옷들 가져오기도 하고)

현금/카드 결제 도와드리고

끝! 이 아니라 무한 반복.


화/목 오후에 와서 일 돕고, 토요일 하루종일 와서 일 도우며 보내 엄마가 없는 일주일동안 아빠가 맘고생 몸고생 하신듯 하다. 엄마는 아빠가 세탁소 일로 연락을 더 자주 할줄 알았는데 연락이 몇번 없었다며 의아해 하시기도 했다 (할머니 일로 엄마가 정신 없을까봐 아빠가 배려해주신것 같다).


목요일 오후에 올때는 세찬이도 같이 오고 싶다고 해서, 정말 오랫만에 친할아버지(세찬이에게는 증조 할아버지)와 세찬이가 만나기도 했다. 그동안 안본 사이 이렇게 컸냐며 기특해 하셨다.


세찬이가 찍은 사진 | 세찬이와 증조(!)할아버지

화/목 아침에 재택근무로 8-12시 일 하고, 점심 먹을새도 없이 운전하고 세탁소로 내려가 1시쯤부터 일 시작.

할아버지 할머니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사 주시기도 했다.


또 옷 태깅 할때 옷핀을 많이 써야 하는데, 손녀딸 손 다치지 말라고 할아버지 & 할머니께서 옷핀을 손수 닫아놓으셨다.

가.. 감사한데 이러면 손이 더 가고 시간이 더 걸려요…



나중에 나 가고나서 아빠한테 칭찬을 많이 하셨다고 그런다. 선미가 일 잘해서 든든하고 기특했다고 (10년전에 무상으로 일 많이 한게 어디 안가네요.. ㅎㅎ).


***


오고 가는 손님들하고 스몰토크 하다보니 10년전에 본 나를 기억 하는 손님들이 의외로 있었다.


엄마가 한국에 1주일 가 있다고 하니

“드디어 휴가를 냈군요! 당신 엄마를 위해 참 잘 되었어요!”

“뭐라구요? 일주일만에 돌아온다구요? 너무 짧네요!”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엄마가 손님들에게 딸 얘기를 가끔 하셨는지

“아 당신이 그 첫째 딸인가요?” 묻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또 한번은 “아 당신이 그 버클리 주립대 나온 딸..?” 이러시길래

“사실 저희 세 자매 다 유씨 버클리 나오긴 했어요..” 대답하니

부모님이 너무 열심히 일하시며 딸들 훌륭하게 잘 키웠다고 치켜 세워주시던 손님도 있었다.

(“전공은?” “화학이요.”

“지금은 무슨일 해요?” “약사에요.”

“우와 그거 대단한 직업이지!! 잘됐어요!” “감사합니다”

손님이 놓고 간 옷 태깅하고 주머니 체크 하며 나온 명함을 보니 손님은 변호사였다. 손님이 더 대단한거같아요..)


어떤 손님은 엄마를 위해 가져왔다며 꽃병을 두고 가기도 하셨다.

엄마께 카톡으로 사진 보내 드리니 그 손님은 올때마다 그러신다고, 좋은 손님이라고 그러셨다.



***


미국 이민 후 학교 열심히 다니며 내가 성장하고 내 커리어를 쌓을수 있었던 건 고맙고 염치없게도 엄마 아빠가 무한 반복되는 세탁소 일을 10+년동안 꿋꿋이 하며 서포트 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쌓아온 모든 걸 뒤로 하고, 세 딸에게 보다 나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이민을 결정한 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어떤 선까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엄마는 이번 1주 휴가 아닌 휴가로 그동안 쉬지 않고 묵묵히 일해온 시간을 조금이나마 보상 받으셨을까?

아빠도 한국 가고싶으실텐데, 아직도 당신 감정 표현 하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빠라 그런 마음을 잘 감추고 계신걸 안다.


생활 속 사소한 영어 대화도 “잘 안들려~ 뭐라는거냐?” 하실때가 종종 있는 엄빠인데, 이 두분이 그동안 비한국인 고객들 상대로 세탁소 사업을 하며, 얼마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또 그 와중에 손님들과 길고 깊은 관계를 좋게 유지해오고 사업을 가늘고 길게 이어오고 있는 엄빠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엄빠에게 잘 해주시는 손님들도 참 착하고 복 많이 받으시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더더 행복하기만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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