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살 되려하는 미국 꼬맹이의 한국말
2017년 5월에 태어난 세찬이는 이제 다음달이면 3살 생일을 맞는다.
내가 약대 2학년 과정을 끝낸 직후 여름방학동안에 태어난 아기는, 엄마인 내가 학교 마저 다니고 (미국 약대는 주로 4년제), 졸업 학점 쌓으려 로테이션하고, 졸업 하고서도 레지던시 한다고 바쁜척좀 하느라, 스페인어가 모국어이신 시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세찬이가 생전 처음으로 한 말은 스페인어로 우유를 뜻하는 "leche [레체]"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할머니집에서 자라온 세찬이는 비교적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나마 1-2주에 한번씩 엄마인 내가 한시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갈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이 말하는 한국어를 옆에서 듣고 어설프게 따라하는 정도?
나는 나중에 세찬이가 일상 한국어 말이라도 잘 하며 좋겠다 싶은 마음에 자꾸 세찬이한테 한국어로 말 하긴 한다. (물론 좀더 크면 한국어 책도 많이 사다주고 싶고, 읽게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 애가 얼마나 흥미를 가질지 아직 모르겠다.)
나한테 말할때는 "엄마, 안아줘," "사탕 주세요," "네," "아니야," "책 봐요," "에리카 이모," "올리비아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 자기가 아는 한국어 존댓말 반말 섞어가며 최대한 활용하고.
시가족께 말할때는 "cargame (나 들어올려줘요)," "abulo, dulce por favor (할아버지, 단 거 주세요)," "si (네)," "no (아니요)," "los libros (책들)," "tio Luis (루이스 삼촌)," "tio Cone(꼬네 삼촌)," "abuelo, abuelita (할아버지, 할머니)"엄마보다도 스페인어를 더 빨리 배워가고 있다.
아직도 밤마다 "엄마, leche (우유), leche 주세요" 이렇게 한국어+스페인어 짬뽕으로 부탁하며 자는 엄마를 깨우는 세찬이.
다른 집 비슷한 또래들에 비해 여러 언어 한번에 배우느라 힘들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 말이 조금 느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손짓 발짓 비언어적 표현들 마구 섞어가며 엄마에게, 아빠에게, 또 같이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시시때때로 자기가 원하는걸 요구하고, 대화 하려고 노력하는 세찬이가 엄마는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말을 조금씩 배워나갈때마다 세찬이 특유의 귀여움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까먹기 전에 몇가지 예를 적어두려고 한다.
밤이면 밤마다 아직까지 우유를 찾는 세찬이. 분유는 진작 졸업 했지만,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신 시가족들이 아직도 날마다 타 먹이시는게 있었으니, 바로 니도(Nido)이다. 한국에서도 네스퀵으로 유명한 브랜드, Nestle 에서 만드는 제품인데, 분유같이 생겼지만 엄밀히 말해 가루로 된 우유라고 한다. 1-3살 애들이 먹게끔 나온다.
한밤중에 두어번, 엄마 깨워서 이 우유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한병(8 oz = 240 mL)을 내리 다 먹고 나면 꼭 자기 빈 병을 책꽂이 위에 놓아 달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언젠가부터 "'위에다 놔요' 라고 말 해야지" 하고 알려줘 왔는데, 이 말의 발음이 어려웠는지 늘상 "나나" 라고만 따라해오더니, 몇일전부터 아주 정확하게 "위에다 놔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구 세찬이 그렇게 한국말 잘했어? 알았어 엄마가 위에다 놓고 올게!"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세찬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집에 있는 강아지들이랑 치고 박고 노는걸 좋아한다. 공 멀리 던져서 강아지들 운동 시키는 일(?)도 좋아하는데, 나랑 같이 친정에 놀러가면 원래 까불이이던 성격이 더 까불이로 업그레이드 된다.
친정집에 이모들이 사다놓은 공들이 몇개 있는데, 언젠가 가족들이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데 공을 가지고 놀다가 세찬이가 작은 사고를 쳤다. 세찬이가 가지고 놀던 공이 결국 밥상 끄트머리에 와 쾅 소리를 낸 것.
그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그런 세찬이가 마냥 예쁘신지 아무 소리 내지 않으셨는데, 세찬이가 갑자기 내 뒤에 와서 "혼나. 세찬이 혼나." 이러고 숨었다.
"세찬아, 아무도 세찬이 안 혼내, 괜찮아! 이리 와서 밥 먹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몇 분간 자기 기분이 풀릴 때까지 끝까지 내 뒤에서 안나왔다.
몇일 뒤, 세찬이가 밤에 잠이 들랑 말랑 하다가 또 번쩍 깨서는 "엄마, leche" 또 이랬다. 우유를 막 먹은지 얼마 안된 때라, "안돼 세찬아. 너 지금 우유 또 먹으면 자다가 토할수도 있어. 지금은 그냥 자고 이따가 밤에 자다가 배고프면 엄마가 그때 줄게." 이랬더니, 세찬이가 "나 혼나" 하고 또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제서야 알았다. 얘 "혼나"의 뜻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거같군 ...
"세찬아, 이럴땐 '혼나'가 아니라 '삐졌어요' 라고 말 하는거야. 세찬이 삐졌어?" 하고 알려주니 그제야 "나 삐졌어요." 하고 몇분을 이불 속에서 뒹굴 뒹굴 하더니 결국 잠이 들었다.
세찬이는 더 애기였을때부터 유투브를 많이 보면서 자랐다. 매 시기마다 좋아하는 비디오가 달라지는데, 요즘좋아하는 비디오는 이런 종류들이다 (링크 누르면 비디오로 이동):
트랜스포머 버젼으로 범블비가 부르는 black and yellow
닌자거북이들이 나와서 BTS - Idol에 맞춰 춤추는 비디오
무서운 유니콘 인형을 찾아 집안을 헤매는 Hobby 아저씨
킹콩 vs. 티라노사우르스 ... 배경음악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도대체 세찬이가 이 비디오들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들 따라부르고 춤 따라추기도 하면서 잘 본다. 이중에 마지막에 리스트 되어있는 저 강남스타일!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는데,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 발음으로 "그건 너! 그래 바로 너!" "나는 싸나이~" 이러는게 참 귀엽다.
그제 밤에 세찬이 재우려고 침대맡에 앉아, 집에 있는 뽀로로 예쁜 말 놀이 책을 읽어주는데, "안녕" "고마워" "축하해" 이런 말 내가 읽어주는대로 잘 따라하다가 "사랑해~" 부분이 나오자 갑자기 강남스타일의 "싸나이~" 억양으로 "싸나해~" 이랬다. 이날 이후로 "세찬이 엄마가 사랑해!" 말 해줄때마다 "싸나해~" 이렇게 따라한다. ㅠㅠ 웃긴데 귀여워 ...
가끔가다 세찬이한테 "How are you today? 오늘 어때?" 물어봐도 아직 어떻게 대답 할지를 모르는지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Are you happy? 기뻐? 아니면 are you sad? 슬퍼?" 추가로 물어보면, 그제야 "I'm happy. 행복해!" 하고 대답을 하곤 했다.
한두달 전 부터 남편하고 둘째 갖는 얘기를 해왔었고, 몇주 전 집에서 테스터기로 임신을 확인 했다. 친정 식구들에게도, 시집 식구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세찬이가 도와줬는데, 가족들이 세찬이에게 "what's the secret? (비밀이 뭐야?)" 물어보면 세찬이가 "there's a baby in mommy's tummy (엄마 배 안에 애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방법이었다. 양가 가족들 모두 기뻐해주셨다.
그러다 며칠전 저녁, 세찬이 침대에 누워서 같이 놀고 있는데 갑자기 세찬이가 "I 슬퍼, I sad" 이러는 것이었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자기 감정 말해주는게 처음이어서, 또 그 감정이 슬프다는 거여서 속으로 당황 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세찬이에게 물어봤다. "왜 슬픈데?"
한참 얘기를 안해주길래 내가 이것저것 물어봤다. "배고파서 슬퍼?," 아니란다. "놀고싶은데 엄마가 안놀아줘서 슬퍼?," 아니란다.
이제 손가락으로 눈 밑을 그으며 눈물 떨어지는 시늉을 한다. 얘가 왜이럴까.
"혹시 ... 엄마 배에 아기가 있어서 슬픈거야?," 맞단다.
벌써 질투를 하는건가? 아니면 엄마가 아기를 잡아먹었다고 생각해서 아기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건가? 아니면 아기가 있어서 엄마가 아플까봐 걱정해주는건가?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세찬아, 아기가 엄마 배속에 있어도 엄마는 세찬이가 제일 좋아. 세찬이를 세상에서 제일 제일 사랑해." 하고 꼭 안아 주었다. 마침 남편이 침대 근처로 와서 눕길래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남편도 세찬이에게 사랑한다고 표현 해 주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기는 세찬이 동생이라고. 여동생이면 좋겠어, 남동생이면 좋겠어? 남편이 물으니 세찬이는 그제야 "boy!"라고 대답 하며 웃었다.
"세찬아, 아직도 슬퍼?" 물으니, "I am happy!" 하고 대답 했다.
한국은 지난 몇 달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대처를 잘 해왔다. 정부도 잘 했고, 질병본부도 잘 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점점 악화 되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겠지 ...).
나는 약사로서 미국 주 정부 보험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도 4주 전부터 재택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7:50분까지 침대에서 뒹굴수 있다는건 정말 크나큰 축복이다!
잠옷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로그인 한 뒤에 일을 시작 하고 있으면, 한 30-40분정도 뒤에 세찬이가 일어난다. "엄마! Are you working?" 2층 계단 위에서 세찬이가 물어본다.
"응, 엄마 지금 여기서 일 하고 있어." 하고 내가 대답 하면, 세찬이의 다음 말은 매번 똑같다. "Okay, 엄마. Don't go outside, 엄마! There is virus outside!"
요 몇일 공원으로 동네로 산책 나가고 싶어하는 세찬이에게 가족들이 밖에 나가면 바이러스가 있어서 나갈수 없다고 알려줘왔는데, 그걸 그대로 엄마인 나에게 알려주는거다.
말 한참 배우는 이 시기가 제일 귀여운 시기라고들 다들 그러는데, 그래서 이 중요한 시기를 기록으로 가끔 남겨보려고 한다. 브런치 포스트 되게 오랫만에 쓰는거라 지금은 또 괜히 조금 어색하지만 앞으로 자주자주 기록해야겠다.
+제목부분 배경은 구글 검색하다가 여기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