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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 Sep 21. 2015

가죽소파가 잘못했네

‘급’이 되는 건가? 그러다가 되고 싶다, 그 다음에는 돼야지

가끔 지나온 삶을 반추하다가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흑역사란 놈이 스스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꼭 다른 이를 통해 보여 지곤 하는데 얄궂게도 공격의 대상이 ‘나’이어야만 하는 조건식일 때 선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업’이라면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보상심리로 업고 가야 할 인생의 한 부분일 게다. 왜 좀 더 한 살이라도 젊은 때가 아니고 하필 지금이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때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위안을 가져본다. 


어제저녁 TV 드라마가 또 한 번 부끄러웠던 시절의 나를 불러냈다. 비록 상황이 일치하는 건 아니었지만, 부끄러움이란 놈은 작은 반응에도 회피를 크게 하는 경향이 있어 주둥이가 아니어도 몸의 일부나 꼬리 어느 부분이 낚시 바늘에 걸려 나오기 마련이다. 


A: 근데, 진짜 그만둘 생각으로 그랬어? 

B: 솔직히 관둔다, 만다, 거기까지는 생각 안 했죠. 근데 거기 전용클럽 가죽소파에 딱 앉으니까 그냥 잘리고 싶어 지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 없거든요. 샴페인 한 모금, 캐비어(cabiar) 한 숟갈 거기에 멘탈이 흔들려요. 먹어봐야 맛도 모르는데 그 의전에 맛이 가는 거예요. 어? 나도 이 ‘급’이 되는 건가? 그러다가 되고 싶다, 그 다음에는 돼야지, 기회의 오라 끈을 잡겠다 하면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영혼이 털린단 말이죠.

A: 가죽소파가 잘못했네. 

-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중 개인교사 박 선생의 대사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화면

군대 시절 동기와 경합하다 끝내 어깨 위에 내무반 견장을 달고 소파의 권위를 맛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에도 그 놈의 완장의식은 털어내고, 덜어내도 언제든 마음 한 구석에서 끊임없이 자라곤 했다. 오만했던 과거는 오랜 시간 나에게 보여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드라마를 통해 접신하셨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언제 나를 그때의 모습에 데려다 놓을지 모른다. 지금으로서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식 없는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성실이라는 패라도 꺼내 위안을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차선으로 그릇도 되지 못하면서 남을 위한 답시고 오지랖을 펴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때마다 그냥 웃는 일이다. 잘못은 가죽소파가 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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