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는 글 말미에 몇 줄...
지금으로부터 38억 년 전쯤 지구에 첫 번째 생명이 나타났고, 많은 공전과 자전의 반복 속에 공룡이란 존재가 등장해 무려 1억 5천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다. 당시 우주인이 지구에 왔다면, 지구는 '공룡의 행성'이라고 불려졌을 것이다. 만약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구는 지금 공룡 머리에 볼록한 새가슴, 짧은 팔과 공룡 다리를 가진 존재가 V자를 그리며 우주인의 카메라에 응하고 있을지 모른다.
6500만년 전, 지구의 생물 중 1% 남짓한 어떤 미약한 존재가 소행성 충돌 이후 바닷속에서 최악의 환경을 이겨내며 힘겹게 생존했을 것이다. 바다 속에서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느러미를 가져야 했고, 바다 생물들 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뭍으로 눈을 돌리며 튀어 오르는 습성은 결국 지느러미를 다리로 발달시키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에 욕심을 내던 존재는 물과 육상을 오가는 도마뱀 형태로 한동안 존재했을 것이다. 그 존재는 자신의 과거 모습을 지워가며 육상의 계절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점점 털이 난 동물로 변해갔을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생존하기 위해 이종, 삼종, 그 이상의 교배를 거치며 변태와 멸종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렇게 유인원은 변태에 성공했을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600만 년 전, 인간의 조상과 침팬지의 조상이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침팬지와 인간의 DNA 염기서열이 99.4% 동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침팬지는 오랑우탄보다 인간에게 더 가깝다. 침팬지가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거라면 인간의 조상인 셈이고, 그들도 진화를 했다면 인간의 사촌쯤 되는 셈이다.
바닷속 어류가 그들의 무리를 떠났 듯이 침팬지 중의 한 무리도 어느 날 나무에서 내려와 그들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 이 무리들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점차 침팬지의 모습을 지워가며 인류의 조상인 호모속(homo)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렇게 호모속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육상 척추동물 중에 0.1% 비율로 아슬아슬한 생존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1만 년 전, 인류는 수렵, 채집의 삶에서 농경사회 문화로 접어들면서 인류의 모습이 변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던 인류는 밀과 곡물 등을 주식으로 편식하게 되면서 키가 줄었고, 인구는 오히려 팽창했다. 학자들은 인구가 늘어나게 된 이유에 대해 먹을 게 많아져서가 아니라 이유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 사냥을 하던 시대에는 아이를 젖에 물리고 다녀야 했고, 수유가 가능한 시기에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 인류는 이유식이 가능해지면서 수유를 빨리 멈추게 되었고, 여성들의 가임기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그렇게 늘어난 인류는 현재 육상 척추동물 중 98%를 차지하며 지구를 정복 중이다.
얼마 전에 상영된 영화 ‘혹성탈출’에서는 유인원이 인간과 비슷한 지능과 언어를 가진 존재로 묘사되며, 인간의 문명에 맞서 싸우는 대등한 존재로 연출됐다. 혹시 침팬지는 인간과 맞설 수 있는데 너그럽게 참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침팬지가 인간과 맞설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은 일단 외모에서 딸린다. 그들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다. 이 분별력 없는 외모들은 인간과 대응할 수 없는 핸디캡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핸디캡이 다른 요인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두, 즉 인간의 작은 머리 추구 현상이다. 최근 인간들은 뛰어난 외모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머리가 작은’ 사람을 우선하고 있으며, 스스로 작은 머리를 가진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침팬지는 인간보다 세배 가량 작은 머리를 가졌다. 인간의 뇌 용량이 1350~1500cc인데 반해 침팬지는 400cc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맞설 수 없었던 침팬지의 핸디캡을 인간의 소두 욕구로 극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소두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최근 복잡한 사고 능력과 운동, 지각 활동을 담당하는 뇌의 신피질(neocortex)이 클수록 사회적 집단 활동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침팬지의 머리는 50개체의 사회적 집단 크기를 유지할 수 있는데 반해 머리 크기가 3.5배가 큰 인간의 사회적 집단 크기는 약 150개체 정도였다. 한 사람이 관계형성을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수가 150명 정도라는 것이다. 영국 문화인류학자 던바가 최근 실험을 통해 밝혀낸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다. 던바는 페이스북 이용자 3300여 명이 참여한 2개의 설문조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동시에 여러 명과 관계를 진행할 수 있는 SNS에서도 이 수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던바의 수 150 안에는 긍정적 친밀성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 안에는 가십과 일종의 뒷담화 같은 부정적 관계도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뇌 용량 증가에 일조했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회적 뇌 가설’이다. 결국, 침팬지는 그들의 뒷담화 능력을 향상시키지 않는 한 인간과 맞설 수 없다는 셈이다.
사회적 크기가 50개체 내외의 침팬지들은 늘 서로 털고르기라는 스킨십 행위를 통해 관계를 유지한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거의 털고르기다. 인간은 어떨까. 150명을 털 고르려면, 아마 잔업은 커녕 매일 밤샘을 해야 할지 모른다.
'로얄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지에 보고된 던바의 연구결과(지난 1월 19일 AFP통신에 보도)에 의하면, 인간이 가장 의지하는 털고르기 관계는 15명 내외라고 한다. 더구나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관계는 고작 5명 내외라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은 50여명이고, 150명의 개체는 그냥 아는 정도의 친구라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디지털 관계 모두 동일한 수다.
침팬지는 밥 먹고 하는 일이 고작 털고르기지만, 그들은 50명 내외의 관계를 충실히 유지하며 사회적 집단을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다. 반면에 인간은 15명 이내의 약세를 숨기기 위해 150의 강강술래로 외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침팬지들이 이 진실을 아는 순간, 그들의 침공은 시작될 것이고, 지구는 어느 순간 공룡의 행성, 인간의 행성에 이어 침팬지의 행성이라고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글은 학계의 자료와 기사를 바탕으로 글쓴이의 추측을 가미한 글이며, SMD(시흥소셜미디어연구교육센터)에 함께 게재된 글이다. 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편집자 주> 참고 - EBS 인문학. 장대익 교수의 ‘과학으로 말하는 인간’, 기사. “'던바의 수' SNS에서도 통한다… 의미 있는 관계 150명 최대“ http://news1.kr/articles/?2550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