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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Feb 23. 2024

실수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연유로 벌어진 일인지 잠시 생각해 봐야 전후 사정이 이해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앞에선 꿈쩍도 할 수 없는 조각상이 되어버린다. 정신을 차려봐마음에선 이미 손댈 수 없다고 단정지은 터라 상황을 덮은 채 일어나기 전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눈길을 돌린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마음고생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라며 내 탓을 압축하려 들지만 나의 실수 좀 빼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순 없다.


애들 어릴 적 우연한 기회에 토끼 한 마리가 생겼다. 부담스러웠지만 애들이 좋아라 하니 마다할 수 없어 키우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하고 있엄마가 되어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맘이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해서 토끼가 있던 시간 속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듯하다. 


애들에게 전적으로 사랑받는 존재였고 사랑을 내미는 존재였기에 토끼의 의미는 유별나고 남달랐다. 토끼가 내미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먹는 애들의 마음이 하루하루 확장되며 다양하게 충전되는 것도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토끼 안에서 즐기고 경험하는 모든 시간들이 애들에겐 친절한 성장으로 스며들었다. 내가 쏟는  시간보다 토끼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 애들에겐 특별한 유년으로 저장되어 다. 


준비도 없이 키우게 된 토끼의 안식처나 먹이를 마련하는 일은 온통 내 차지였다. 일단은 누런 종이 스로 집을 마련했다. 호기심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하루 새에 박스를 뛰어넘기에 더 높은 박스로 바꿔주었다. 그럼에도 이틀 만에 다시 넘어와 더 높은 박스를 준비했더니 오호 이번엔 점프력이 미치지 못해 안심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토끼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돌봄이 걱정됐지만  곁을 행복하게 지키는 애들 때문에라도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이 차올랐다.


청소 후 뒷베란다에 청소기를 정리하고 돌아 나오는데 여닫이문 앞에 토끼가 널브러져 있었다. 극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기어코 높은 박스를 탈출해 소리 없이 주인을 따라왔다가 팔꿈치로 툭 쳐 닫은 여닫이문에 끼어 변을 당한 것이다. 가녀린 떨림을 두고 어찌할 바 몰라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고를 알게 될 애들 원망이 귓바퀴를 짓이기는 듯했다. 결국 직장에서 짬을 낸 남편이 모든 사후 처리를 하고 어딘가로 데려가 묻어 주고 마무리했. 유치원에서 돌아와 토끼를 찾던 애들은 통곡했다. 온전한 내 탓으로 받아들인 나 또한 속울음을 삼켰다. 작은 생이 명을 달리 한 사고는 나의 실수가 분명하기에 뇌를 찧어대는 아픔으로 밀려왔. 점프를 잘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안도가 몹쓸 짓으로 이어진 것이다.


살다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놓쳐 실수할 때가 있다. 급하거나 간절하거나 정신력약해질  때도 종종 실수가 따르는 듯하다. 열심히 해보려던 것도 실수와 연결될 땐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무기력해진다. 정신 차리고 보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서둘러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은 금세 초조해진다.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다 어긋나면 실망감에 휩싸여 버티 힘들 때도 있다. 경제적 손실로까지 이어진 한없이 위축되기도 한다. 위축된 마음에서 벗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해 안 되겠다는 배움을 얻은 후 겸손해지기까지가 실수로부터 얻게

성장의 효과라는 걸 알지만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상처는 몹시 깊어진다. 실수 때문에 긁힌 상처는 속으로 상당히 깊기아무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나 다. 그래서 꺼림칙하지만 숨기고 변명하는 길을 선택할 때도 다. 내 탓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쌓은 삶의 노력과 수고에 흠이 생기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나면 삶은 의외로 명쾌한 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실수 앞에 서면 시인하기보다 움츠러드는 게 우선순위가 되고 만다.


'실수' 말 한마디만 워도 힘에 부치는 기색쯤은 뚜렷이 줄어들 텐데 그게 어디 사람의 힘으로 쉽게 워진단 말인. 그저 인정하고 마땅한 책임을 질 때 진정한 삶의 범주에 놓인다는 사실 하나 기억하며 살아가는 중다. 감당해야 한다는 만으로도 실수는 한 단계 회복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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