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발 550m 정원에서 삶에 올릴 근사한 고명 찾기

10만 평 치유의 정원 '로미지안 가든'

by 오순미
요즘 부쩍 마음에 다가오는 단어가 있다. 자연이라는 말, 스스로 그렇게 이루어지고 존재하는 것.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고 원래부터 저절로 그렇게 되어 있던 것. 만사가 조화를 이루면 자아를 잊게 된다는 바로 그 경지. 편안한 신발을 신고 내 발의 존재를 잊듯이 평화로운 마음에 들어 나를 잊는 그 경지를 언젠가는 누릴 수 있을까?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 : 김미라> 중 304쪽


원래부터 저절로 형성된 것과 사람의 힘을 더한 것이 잘 어우러진 자연을 강원도 정선에서 찾았다. 지병을 앓던 아내가 숲과 햇살, 바람 속에서 건강해지자 '사랑과 회복의 공간'으로 가꾸기 시작한 지 15년이나 된 "로미지안 가든"이 그곳이다. "로미지안 가든"은 '로미'를 위해 '지안'이 직접 가꾼 10만 평 규모 '치유의 정원'이다. 아내의 애칭 '로미'와 남편의 호 '지안'을 엮어 정원 이름을 짓고 지금도 매일 가꾸는 중이다.


지난 달 평창 '육백마지기'에서 별 보기를 마친 후 정선 가리왕산에 위치한 로미지안 가든에 들렀다. 로미지안 가든엔 '지안(엘베스트 그룹 설립자 손진익 회장의 호)'이 품은 삶의 철학과 성찰의 메시지를 숲길이나 돌 위에 문장으로 새겨 놓아 호응하며 걷게 된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그 안에선 삶의 속도가 이완되어 느긋한 상태가 된다. 피톤치드 가득한 550 고지 숲을 걷다 보면 엉킨 마음이 부부의 메시지와 부부가 가꾼 자연에 닿아 말끔하게 빗질되어 돌아온다.


▲로미지안 가든을 설립한 부부상과 곳곳에 설치된성찰의 메시지 중 하나


로미지안의 다양한 숲과 조형물이 전하는 메시지


매표소에서 로미지안 정상까지 셔틀 서비스가 수시로 운영된다. 타고 올라가면 약 2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석회암층 '천공의 아우라'와 마주한다. 이곳엔 많은 양의 지자기(地磁氣)가 방출되어 부족한 기를 채워주므로 기가 약한 사람들은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다(바로 옆에 숙소 운영).


천공의 아우라 뒤로 가면 사과 동상, 암벽등반 체험장, 자작나무 수국정원을 거친다. 수국은 이미 색이 바랬지만 형태는 그대로여서 실망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수국이 차지한 정원의 규모로 보아 절정기 7월엔 시선이 몰입될 수밖에 없을 듯싶다.


수국정원을 돌아 올라오면 알프스 목동들의 관악기 알프호른을 부는 남녀 조각상과 만난다. 가운데 내 알프호른도 마련돼 있어 부는 시늉을 하는 중 스피커에서 호른 소리가 울려 퍼져 실제 호른을 연주하듯 들뜬 기분이었다.


▲알프호른을 부는 남녀 조각상. 가운데는 누구나 알프스의 목동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호른 연주가 끝난 후 그늘에서 쉬다 '햇빛 치유장'으로 향했다. 탁 트인 3개의 전망대에서 한점 가림 없이 해맞이할 수 있는 고요한 곳이다. 멀리 정선의 한가로운 풍경까지 더해 시름을 잊는 치유장으로 완벽했다. 마련된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니 "평화로운 마음에 들어 나를 잊는 그 경지'에 이르는 것 같았다.


▲햇빛 치유장 전망대. 멀리 정선의 풍경이 한가롭다. 3개의 전망대가 설치되었으나 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어 함께 담지 못했다.


그 느낌 그대로 로미지안의 시그니처 '가시버시성'으로 향했다. 사랑을 테마로 만든 성 상부의 아리탑 둘레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듯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여기'란 글귀가 적혀 있다. 형상화한 '지혜의 눈'은 세상을 비추는 혜안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탑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우린 사랑이란 의미 앞에 현실 부부답게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사랑을 테마로 만든 가시버시성은 로미지안의 랜드마크이며, '가시버시'는 부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가시버시성 상부 아리탑에는 지혜의 눈을 형상화한 로미지안의 로고가 세상을 비추는 혜안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성에서 보였던 설립자 부부상으로 걸어가 안녕을 물었다. 꼭 닮은 인자한 모습이 부부를 정의하는 기준 같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는 표정과 헤어져 '아라리탑'으로 향했다. 아리랑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재로 2000여 개의 서로 다른 해석이 있다. 로미지안은 그중 '참된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아리랑(我理朗)을 재해석한 아라리탑을 세웠다. 긍정적 의미로 세계인들에게 아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한 로미지안의 뜻이 아라리탑에 또박또박 적혔다. '여인의 한'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리랑의 해석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라리탑은 아리랑을 재해석한 의미와 천 년의 노래 '정선 아리랑'의 역사를 담고 있다.


자연석 그대로 살린 '아리석문'을 지나 붉은 흙으로 다져진 '붉은 자성의 언덕'에 올랐다. 거기엔 '자성의 노래'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쓰인 책 모형이 있었다.


'에고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배우고 익히고 깨달아 꿈을 이루길...

그리고 나누고 떠났으면...'


이 언덕은 방문자가 자신의 본성과 마주해 성찰하도록 유도하는 상징적인 장소 같았다.


▲붉은 자성의 성. 성찰을 유도하는 상징적인 곳


사색의 힘을 가진 자성의 언덕을 내려와 연잎 가득한 연화정을 지나면 '금강송 산림욕장'으로 들어간다. 고요한 오솔길이 청량하고 서늘하다. 금강송 숲엔 밧줄 놀이터와 다양한 쉼터가 있다. 그곳에 눈길을 주며 우린 가지런히 심은 단풍나무 터널을 타박타박 걸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오솔길에서 내 발자국 소리를 저항없이 들을 수 있었다.


▲금강송 산림욕장으로 가기 위해 거치는 단풍나무 터널.


이번엔 셔틀 타고 올라오던 길에 본 '생애의 탑'으로 이동한다. 탄생, 성장, 완생을 상징하는 세 개의 통나무탑 둘레는 가히 압도적이다. 생애주기를 상징하는 초록, 빨강, 검정의 고깔모양이 어마어마한 통나무탑 위에 얹혀 고뇌와 실패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경쾌하게 풀어가려는 듯하다. 그곳에 앉아 쉬는 틈에 또다시 알프호른의 연주가 들리자 에너지가 충전된 것 같아 '참나무 이끼향길'로 접어들었다.


▲통나무로 만들어 세운 생애의 탑. 수령이 어림잡아 수백 년은 됐음 직하다.


'각시교'와 '각시상'이 있다는 그 길엔 우리 부부 둘밖에 없었다. 숲이 깊은 듯 기척도 없는 데다 뱀이 나올 수 있다는 안내판이 보이자 겁이 났다. 다른 길로 갈 걸 후회하다 어차피 들어선 길 즐기자고 마음을 바꾸니 그제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쓸데없는 두려움이 귀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숲길이었다. 금강송 숲 오솔길보다 더 고요한 '참나무 이끼향길'은 오르락내리락이 반복되는 좁은 길로 '생명의 소리길'과 연결돼 매표소로 이어졌다.


안내도 따라 2/3쯤 둘러보는데 두 시간 넘게 소요됐다. 체력적으로 부담되어 나머지는 나중을 기약하고 로미지안을 빠져나왔다.



▲로미지안 가든 안내도. 정원 구석구석 찾아다니기 쉽게 테마 공간 및 코스별 표시가 잘 정리돼 있다.


로미지안에서 발견하게 될 마음의 평화


로미지안 가든에는 독특한 스토리가 있다. 자연 중심의 치유와 성찰을 표방한 명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산 위의 숙소와 숲 속의 글램핑장에선 숙박과 별 보기도 가능하다. 다양한 숲을 산책하거나 테마 공간을 둘러보다 안정이 찾아들면 삶에 올릴 새로운 고명이 떠오르는 곳이다.


노란색 지단 같은 기쁨, 흰색 지단 같은 담담한 일상, 풋풋한 호박 같은 행복, 잘게 다진 고기처럼 매력 있는 순간들, 주황빛 당근 같은 열정, 그런 것들을 내 삶에 고명으로 올려야겠다.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중 291쪽


로미지안 가든에서 당신도 삶을 돋보이게 할 고명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미처 보지 못한 작고도 귀한 것,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을 발견할지도 모르잖은가. 로미지안 가든에서 취향에 맞는 힐링이 일어나 당신 삶에 근사한 고명이 올라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