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에서 접한 다양한 민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 공개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이 '뮷즈(뮤지엄+굿즈)'를 사기 위해 몰린 방문자들로 북새통이다. 작품 속 캐릭터 '까치 호랑이'를 닮은 배지가 문화 아이템으로 떠오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 민화 '호작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케데헌'의 더피(호랑이)와 서씨(까치)가 상당한 흥미를 끌며 민화까지 관심사에 올랐다. 한국 민화란 조선시대 민중의 소망과 세계관을 해학적, 상징적으로 묘사한 전통 회화를 말한다. 민화 작가는 대부분 무명의 서민 화가들이라 낙관을 남기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작품 대다수는 누가 그렸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더피와 서씨의 모티브를 만난 영월
그중 '호작도'에 등장하는 까치 호랑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강원도 영월 김삿갓 면에 있는 '조선민화박물관'을 방문했다. 충북 단양에서 1박 2일 부부 모임을 마치고 지난 12일 찾아간 곳이었다. 지역은 달라도 단양에서 40분 정도 거리여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박물관은 아담한 규모였다. 조선시대 진본 전시관, 현대 작가 특별 전시관, 전국 민화 공모전 수상작 전시관, 한중일 춘화 전시관(성인만 입장 가능)으로 나뉘어 300여 점의 민화가 전시되었다. 조선시대와 현대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민화의 시대적 흐름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호작도'는 '작호도' 또는 '까치호랑이도'라고도 한다. 호작도는 새해가 되면 궁궐, 사대부, 여염집에서 대문이나 방문 위, 방안, 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였던 문배 그림이다. 1년 내내 잡귀를 막아주고 좋은 소식을 불러들인다고 믿은 상징적인 그림이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을 대표하는 까치가 양반이나 권력을 상징하는 호랑이에게 대드는 풍자적인 호작도가 유행하기도 했다.
조선민화박물관이 소장한 '호작도(虎鵲圖)'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호랑이 시선과 마주치는 정면 응시 구도법으로 그렸다. 호랑이 눈동자를 향한 채 반원을 그리며 걸어보라는 해설가의 주문에 따르니 정말 눈동자가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사방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악령이나 액운을 호랑이의 매서운 눈이 물리쳐 보호한다는 의미로 그린 거라고 했다. 예부터 호랑이는 잡귀를 쫓고 까치는 복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어 까치 호랑이가 민화에 자주 등장한다는 설명이었다. 전문 해설이 없었다면 몰랐을 부분까지 자세하게 알아가는 기쁨이 조선민화박물관의 강점이었다.
전문 해설가의 설명으로 알게된 새로운 이야기들
민화 '봉황도(鳳凰圖)'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봉 잡았다'는 말이 '봉황'에서 유래했다는 속설도 접했다. 한자어로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컷 봉, 암컷 황을 합해 봉황이란 단어가 생기면서 선조들은 봉황이 암수 금슬이 좋다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 봉황 사냥 중 사냥꾼이 봉을 잡으면 황은 놀라 도망가야 정상이다. 그런데 금슬이 좋다 보니 황이 잡힌 봉을 따라와 사냥꾼 입장에선 황까지 잡는 행운을 얻었다는 데서 '봉 잡았다'가 유래됐다고 한다.
박물관 '봉황도'엔 벽오동 나무 아래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는 금슬 좋은 봉황이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다. 봉황도는 행복과 화합, 풍요와 덕을 기원하는 희망의 그림이라고 한다. 용과 학이 혼인해서 낳았다는 상상의 새 봉황은 조선시대엔 왕족, 현재엔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성황당에 절대적 힘이 있다고 믿는 주인공 '순이'의 행동과 심리 변화가 돋보이는 정비석의 단편 소설 <성황당(1937)>을 떠올리게 하는 민화도 보았다. 부처, 산신령, 칠성신, 용신, 서낭신 등 다양한 신을 한폭에 그린 무신도(巫神圖)가 그랬다. 멀리 가지 않아도 각자 믿는 신과 신속하게 만나 기도하도록 무신도는 성황당에 걸었던 민속 회화의 한 유형이다. 서민의 종교 생활에 편의를 제공했던 무신도는 민중의 신앙과 예술이 결합된 그림으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매개체였다고 한다.
세속적 욕망이나 명예보다 자유로운 삶의 가치가 핵심인 '허유세이도(許由洗耳圖)'는 중국 고사를 배경으로 그린 민화다. 전설의 시대로 인식되는 요순시대엔 왕의 자리를 세습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현자를 천거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신하들이 제일 먼저 천거했던 인물은 순임금 이전 '허유'였다.
청렴결백한 허유는 요임금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기가 살던 심산유곡에 들어와 탐욕스러운 얘길 들었다며 귀를 씻는다. 소를 타고 온 친구 '소부'가 귀를 씻는 허유의 사정을 듣고선 "자네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내 소가 마시게 할 순 없다"며 고삐를 잡아당긴다. 두 모습이 담긴 허유세이도는 인간이 탐하는 권력과 명예를 늘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는 애처로우면서도 웃음기를 머금게 한다. 중국 황허강엔 잉어가 거슬러 오르기 힘든 용문 폭포가 있다. 기를 쓰고 노력해도 성공률이 극히 낮은 곳이다. 고통을 견디며 용문폭포에 오르는 데 성공한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은 출세와 희망의 의미를 포함한 그림이다. 그런 이유로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학업에 정진하던 조선 선비들이 부적처럼 지녔던 그림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그림에서 주목할 만한 은유는 '혀'에 있다. 어변성룡도엔 잉어에 없는 혀가 큼지막하게 강조되었다. 혀는 사투리로 '쎄'라 한다. 극도로 힘들거나 지칠 때 우린 '쎄빠지게 고생한다'는 표현을 쓴다. 어변성룡도는 '잉어가 쎄빠지게 고생해 용문폭포에 올라 여의주를 획득한 후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등용문(登龍門)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해설을 듣고 나니 잉어에 '쎄'를 그린 화가의 해학과 익살에서 광채가 나는 듯했다.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와 복을 기원하는 민화 외에도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도', 부부 화합을 의미하는 '화조도', 자손 번창 '포도도', 일장춘몽 '구운몽도' 등 다양한 민화에는 조선 시대 민중들이 추구했던 행복, 이상향, 소망까지 오롯이 담겼다. 민화에 표현된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세상은 옛 사람이나 현대인 모두가 갈구하는 유토피아다. 시대를 넘어도 변치 않는 우리의 꿈과 염원에 가까이 가게 될 그날을 기대하며 박물관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