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본고장 안동에서 마주친 '원이 엄마'의 절절한 편지
여름날 끈적한 공기는 버거워도 겨울의 시린 공기는 기꺼이 견딜 만하다. 한기가 틈탈까 꽁꽁 싸맬지라도 여름과 겨울의 갈래길에선 주저 없이 겨울로 들어설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이지만 서늘한 기운은 버릴 수 없는 감각 중 하나라 매섭지 않다면 사부작사부작 나서볼 만하다.
십 년이 넘었으려나? 헛제삿밥이 기억에 까마득하다. 경북 안동은 다소곳한 한옥의 도시다. 종가댁 마루에 걸터앉으면 종부의 노고가 짐작될 만큼 반질거린다. 예와 학문의 근본이 서린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둔 성리학의 본고장이라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의 숨결이 바람처럼 스치는 곳이기도 하다. 절제와 책임을 중시하는 '문중 문화'와 '선비 문화'가 괸 안동에 다시 한번 발을 디뎌보았다.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 '월영교'로 향하는 길이 한적하다. 느긋한 여유가 아른거리는 그 길을 따라간 건 지난 12월 28일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낙동강 상류 영락교를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먼저 온 여행자들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겨울을 누리러 온 그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져 반가웠다.
세월 건너 월영교에 머무는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의 미투리
월영교에 가기 전 안동시립박물관에 먼저 들렀다. 의식주 및 여가, 학문 등 안동의 문화를 한눈에 접하는 곳이다. 2층 전시실 앞엔 방문객에게 글귀를 선물하는 서예가의 공간이 있다. 내가 받은 글귀는 '정성이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이뤄지는 것도 없다'는 의미의 '불성무물(不誠無物)'이다. 본관을 듣고 족보처럼 두꺼운 책자를 펼치더니 '보성 오씨' 시조의 삶의 태도가 응축된 가훈적 성어라며 정갈한 붓글씨로 써주었다.
"상대를 정성껏 대하면 자신에게도 귀한 결과가 나타나는 법이니 정성을 다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베푼 정성은 되돌아온다는 순환의 원리를 떠올리며 불성무물을 소중히 받아든 채 전시실로 향했다. 관혼상제, 조선 가옥, 문방사우를 지나자 한 통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당신 항상 나에게 말하길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임세권 전 안동대 교수 해석 참고)
조선 양반가 이응태의 아내 '원이 엄마의 편지'는 사별의 슬픔으로 시작한다. 남편이 했던 약속, 자녀 걱정까지 담은 절절한 편지엔 부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빼곡하게 써 내려간 편지는 그녀가 삼은 미투리와 함께 1998년 택지 조성을 위한 묘지 이장 중 우연히 빛을 보게 되었다.
병든 남편의 쾌유를 염원하며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안동포를 만드는 대마 껍질) 줄기와 함께 미투리 한 켤레를 삼았다. 아내의 절박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미투리 한 번 신어보지 못한 채 서른한 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애끓는 마음으로 지은 미투리는 '정성'의 의미를 살피는 불성무물과 연결되어 가슴 뭉클한 유물로 다가왔다.
원이 엄마가 삼은 미투리와 편지는 어두운 무덤 속에 400여 년이나 갇혔다가 그때 모습 그대로 발견되어 월영교에 부활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장례·신앙·가족관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여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도 소개된 적이 있단다. 헛된 수고와 노력은 없다는 걸 그녀가 남긴 한 켤레의 신발이 소리 없이 전하는 듯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월영교 풍경
월영교는 안동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건축한 상징물이다. 낙동강을 동서로 잇는 보행교로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본뜬 형상이다. 월영교를 건너기 전 관광 안내자가 설명한 대로 바닥을 살펴보니 반복되는 선이 한 올 한 올 엮은 미투리 짜임새와 같았다. 살짝 휘어진 다리 전체 윤곽도 미투리의 곡선을 떠올리게 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자연광이 사라지기 전 서둘러 월영교를 건넜다. 야경이 우월하다지만 낮이어야 볼 수 있는 광경도 궁금했다. 월영교의 낮 빛은 안동의 분위기에 걸맞게 부드럽고 고요했다. 산세와 월영교가 비친 낙동강 위를 걸으며 달배의 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과 연인의 낭만이 달무리처럼 번졌다.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진 월영교는 단순한 보행교라기보다 사람과 세월을 잇는 세기의 가교 같았다.
중간을 차지한 월영정에 오르면 낙동강 풍경이 육면 가득 펼쳐진다. 기둥과 기둥 사이 목재 문양이 세련된 액자 틀 같아 눈길만 돌려도 각기 다른 풍광이 동양화 작품처럼 정박해 있다.
시간을 건너 월영공원(서쪽)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사이 수많은 조명이 월영교의 어둠을 몰아냈다. 낮에 보았던 예스러운 가로등은 풍등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12월의 밤 거린 싸늘했으나 낙동강에 비친 등불은 한없이 따사로웠다. 달빛마저 온전했다면 그 미관에 넋이 나갈 뻔했다.
멀리 '달빛대교'가 쏘아 올린 레이저는 하늘가에 도도하고 수변을 밝힌 형형색색의 불빛은 강물 위에 누워 반짝였다. 수면에 비친 빛의 결은 감각을 깨우는 낙동강만의 섬려한 안목 같았다. 검푸른 강 위에 떠가는 달배도 물에 깃든 달인 양 고고한 기품으로 시선을 끌었다. 야경에 대한 로망이 크지 않은 나에게 유려한 곡선이 빚은 월영교의 밤 풍경은 반할 만한 경치였다. 월영교의 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허물었다.
월영교 부근엔 볼만한 명소가 다양하다. 안동시립박물관을 비롯하여 안동 석빙고, 선성현객사(관리 숙소), 이육사 시비(광야), 월영대, 기와 가마터 등 30여 가지나 되는 문화유산이 여행객을 붙든다. 지금은 앙상하지만 벚나무가 줄지어 선 '안동호반나들이길'에 봄바람이 기웃대면 벚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릴 거라 예상하니 아직은 먼 봄이 벌써 마음을 흔든다.
안동에서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낙강물길공원'이라 제일 먼저 찾아갔었다.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을 연상케 한대서 저장해둔 곳이다. 공원 길목에서 공사 중 표지판과 마주쳐 다른 길을 찾았으나 방법이 없었다. 알고 보니 안동댐 안전 강화 공사로 작년 12월부터 3년간 임시 통제구역이 되었단다. 한발 늦은 발길을 돌리며 서운했지만 월영교 감성 야경과 사랑의 편지가 아쉬움을 달랬다.
한국적 전통미를 간직한 동쪽의 평안한 도시 안동에 덤덤한 사랑 한쪽 슬며시 내려놓으면 그 눅눅함이 바삭하게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월영교 겨울빛을 기억 속에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