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름이 모(뭐)니?

내 귀에 들린 '구우꾸 옥호고'의 정체

by 오순미
괴인테 마을 아주머니는 뻐꾸기 우는 소리가 '볼걸! 볼걸!' 한다는 것이다.

옛날, 산을 사이에 두고 사는 처녀와 총각이 혼약을 했다. 가을이면 혼례식인데 갑자기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총각은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 3년을 기다려도 총각이 오지 않자 처녀는 몹져 눕고 말았다. 총각이 전쟁터에서 죽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시름시름 앓던 처녀는 점점 야위어 죽고 말았다.
처녀가 죽은 다음 날 천신만고 끝에 총각이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처녀가 죽었다는 소식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총각도 죽고 말았다. 죽은 두 사람은 새가 되었다. 그래서 구슬프게 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볼걸! 볼걸 ! '


<그때 참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ㅣ 권정생



어느 날부터 창가에서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굵다란 울대를 지나온 듯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쇳소리로 경박하게 울지 않아서 편하다. 중후한 멋이 나는 중저음의 그렁그렁한 소리가 마음으로 쏠린다.


구우꾸 옥호고

구우꾸 옥호고


아침나절 열어둔 창 너머로 4/4박자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릴 때면 구슬픈 것도 같고 간절한 것도 같아 마음이 쓰인다. 아주 작은 기척에도 포다닥 달아나는 참새 떼를 보았기에 창문 열고 나가 새의 존재를 살필 생각은 아예 접어둔다. 울음소린지 지저귐인지 알 수 없는 소리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자세히 듣는다. 어쩐지 이름이 특이할 것 같아 귓가에 들린 소리 그대로 검색(구우꾸 옥호고 하고 우는 새)해보지만 녀석의 정체를 당최 알 이 없다.

"너 이름이 모(뭐)니?"


산골짝도 아니고 숲길도 먼 이 도시에 누굴 찾아와서는 나직한 소리로 연신 불러대는 것일까? 열심히 지저귄 그대들 사랑하고 번식하라는 생태계의 순리 앞에서 황송할 따름이다.


지난 여름 친구 집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아침을 열었다. 두근거렸다. 녀석이 여기까지 쫓아왔나? 반갑고 기특했다.


"저 새소리 들리지? 혹시 이름 알아?"

"뭐긴 비둘기지. '구구'하잖아."

"저게 비둘기라고? 내가 아는 '구구'하곤 분명 다른데? 특이한 소린데?"

"특이하긴 뭐가 특이해. 시끄러워 죽겠구먼."


집으로 돌아와 검색했더니 '비둘기 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그럼 그렇지. 비둘기는 아니지. 1호선 역사 내 천장 위에 앉아 아무렇게나 똥을 갈기던 예의없는 비둘기라니 말이 안 되지.'

친구가 잘못 안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검색 중에 '멧비둘기 소리'바로 밑에 달려 나오기에 혹시나 하고 들어봤더니 내가 찾던 그 울음소리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비둘기 소리가 맞았다. 멧비둘기라고는 하나 허차, 몹쓸 실망감에 헛소리가 샜다. 마음에 붙었던 그 소리가 거미줄에 매달린 듯 덜렁거렸다. '구우꾸 옥호고'를 들을 때마다 깊은 숲 맑은 공기,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 첼로를 위한 독주곡 등이 떠올랐는데 이 상심을 어찌해얄까.


이름이 뭐냐고 묻지 말걸, 검색 따윌랑 하지 말걸, 그랬다면 나만의 특별한 새로, 기분 좋은 하루를 여는 새로 오래도록 남았을 텐데 그 흔한 비둘기라니 헛헛했다. 조금만 참을 걸, 반가운 마음만 드러낼 걸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이름을 알기 전과 후가 딴판이니 말이다. 비둘깃과라는 걸 알게 되자 시큰둥한 반응이 냅다 마음으로 돌진한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고귀한 이름이기를, 희귀한 새이기를 바라던 기나긴 시간도 분분히 흩어진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 저 혼자 변덕을 부린다. 별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쓸데없는 감정을 일으키더니 실망이라는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늘 고약한 생각이 문제다. 생각이 찢어진 손톱처럼 마음을 날카롭고 불편하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생각을 다스리면 마음도 천방지축 날뛰지 않을 게 분명한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답답할 지경이다. 생각은 자유분방해서 다스리지 않으면 마음을 폭발시키는 무기가 되어버린다. 마음을 다스리는 주체는 생각이고 생각을 다스리는 주체는 자신이니 생각이 무기로 변하기 전에 가만히 나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나운 생각을 잠시 멈추고 마음에 둥둥 떠다니는 숱한 감정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은 무게만큼 성숙한 나와 마주할 것이다.



이따금

창가에 앉아


구우꾸 옥호고

구우꾸 옥호고


서성이다 돌아간 멧비둘기의 중저음에 반해서 내 마음 훈훈했다고 적어두련다.



https://youtu.be/c4JQQLfQgwo

멧비둘기 소리



대문그림 화가이자 시인 박항률